박소영/ 404쪽/ 창비/ 2023년 9월
요일에 맞춰 일곱 사람이 하나의 몸을 공유하는 미래, 정해진 요일에만 현실의 육체로 살아가고 나머지 시간은 가상 공간인 낙원에서 살아간다. 17살 이전엔 낙원에 갈 수 없다. 낙원에서의 감각은 실제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느낄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에 17살 이전엔 그것을 배워야만 한다.
미래 사회에 대한 발상이 신선했다.
365 인간으로 살려면 환경부담금 등 많은 세금을 내야 하고 조건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든 미래 사회든 계급에 의해 결정되는 건 변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날 좋아할 거고, 나는 네가 기억을 잃고 어떤 식으로 변하든 너를 좋아할 거야. 그럼 된 거잖아."
"아침마다 네가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은 채로 눈을 뜬다고 해도, 어차피 너는 또 나를 좋아할 거잖아."
"그러면 내가 매일 말해 줄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397쪽)
몸을 빼앗기고 기억을 잃어도, 너와 나는 틀림없이 서로를 알아보고 어김없이 서로를 사랑하게 될 거야.(398쪽)
몸이 아니어도 기억이 없어도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현울림.
몸은 아닐 수 있어도 기억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온전히 동의가 안 된다.
기억이 없다면 그건 한쪽만의 사랑이 되는 거고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짝사랑도 상대방의 감정과는 관계없이 하는 것이니, 짝사랑 범주에 넣어야 될까?
아님 사랑은 상대방을 성장시킨다라는 사랑의 정의에 의하면 어떤 형태로든 둘은 성장할 테니, 사랑이라 해도 좋을까?
미래 사회의 모습보다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했던 소설이다.
아쉬운 점은 이 작가의 전작인 스노볼에서도 받은 느낌인데 좀 산만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