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섯 살 때 일이다. 추운 겨울 그 옛날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덴찌(전지) 불을 추녀 끝(짚으로 엮은 영으로 집 우물 덮어서 그 추녀 끝에 참새들이 둥지를 틀고 거기서 잤다.)에 바싹 들이대면 참새들이 꼼짝 못하고 있다. 그러면 그냥 그대로 산 채 움켜잡아 새끼줄을 허리에 차고 거기다 꿰어 한 꾸러미가 되면 그것을 우리 집에 벗어놓고 간다. 그리고 그 이튿날 낮에 와서 꽁꽁 언 참새를 껍질을 벗겨 구워먹고 그랬다.
내가 한번은 그 참새 고기를 먹고 물을 길러 가겠다고 방구리를 이고 나섰다. 그때는 어린애에게도 물을 길러오라고 빨간 오지 방구리를 사주던 시절이다. 어른은 커다란 질 동이지만 나는 예쁜 빨간 오지 방구리다. 그 방구리를 이고 나가는 나에게 엄마는 참새 고기 먹고 물 길러 가면 방구리 깨트린다고 못 가게 하셨다.
나는 한사코 고집을 부리고 방구리를 이고 나섰다. 물을 무사히 잘 길어 가지고 집에 거진 다 와서 그만 돌부리를 차고 넘어져 물을 함빡 뒤집어쓰고 그 예쁜 방구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그 방구리가 아깝기도 하고 또 꾸중 들을 걱정도 되고 하여 털퍽 주저앉아 크게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울다 너무 지쳐서 흙장난도 하고 다시 생각하고 크게 울어도 보았으나 엄마는 통 내다보지 않으셨다. 또 칭얼칭얼 해보다 또 소리소리 지르며 울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지나 너무 힘들었다. 그때야 엄마는 내다보시고 방구리 깨뜨리고 무얼 잘했다고 그렇게 앉아 우느냐고 고함치시며 들어오라 하셨다. 나는 너무 겁도 나고 춥기도 하여 그만 징징 울며 어정어정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자랄 때 좀 엉뚱했던 것 같다. 밭에 고추를 심었던 때가 있었다. 옛날에는 고추를 그대로 파종하는데 두둑을 만들어 고추는 낮은 곳에 심고 두둑에 흙으로 고추가 크면 북을 주곤 했다. 고추씨를 무데기 무데기 지어 심고 많이 쏟아져 나오면 애벌 맬 때 솎아주고 두 벌 맬 때 솎고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하여 나중에 쓸만한 놈 한 개 씩을 아주 가꿔 세웠다. 고추가 어릴 때 그 두둑에 나는 봄 배추 부룩을 쳤다. 그 배추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동리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6.25 이후 1.4 후퇴도 지난 그 이듬해 봄에 피난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우리 식구는 쌀, 참깨 등 주요 곡식을 앞밭을 파고 묻었다. 그런데 땅을 깊이 파니 원 밭 거름 먹은 흙과 다른 색깔인 황토흙이 나와 표시가 났다. 나는 거기다 들깨를 훌훌 뿌려 모를 부었다.
피난을 가서 나물만 뜯어서 가지고 간 쌀과 그 나물을 넣고 죽을 쑤어 먹었다. 저녁에는 언제나 그랬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그 들깨가 드문드문 났던 관계로 얼마나 토실토실한지 대견하였다. 어느 날 비가 구중구중하게 왔다. 어른들은 비가 오니 모두 방에 계셨다. 나는 그 들깨모를 뽑아 머리에 이고 그 건너 밭으로 가서 콩밭 고랑에 드문드문 꽂아주었다. 그 들깨모가 얼마나 실하게 자랐는지 내가 화제에 올랐었다.
나는 식구가 많은 가정에서 자랐다. 여자가 많은 관계로 나는 한데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방에서 바느질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조를 자르면 밥(풋팥을 두고 일하는 분들에게는 그 귀한 쌀을 좀 섞는 조밥이다.)을 내다 잡수시며 박장대소 이야기꽃도 피우고 무척이나 즐거운 것 같았다.
엄마를 졸라 우리 조 자르는 날 대리키를 차고 앞서 나섰다. 그런데 엄마는 “너는 못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도 잘 할 수 있어.” 하고 겅둥겅둥 즐거워 앞서 밭으로 뛰어갔다. 어른들 하시는 걸 보고 조 이삭 서너 개를 함께 잡아 이삭만을 잘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자른 조집대 그 가는 곳이 내 눈을 찌르는 게 아닌가. 겁 많고 경험 없는 나는 펄펄 뛰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그 다음 해 생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