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물은 그냥두지.

박 우물

by 역사와동화

큰 대문을 열면 넓은 바깥마당 섶에는 댑싸리 해바라기가 눈에 선하다. 해바라기는 종일 볕을 쫓아다닌다. 그 댑싸리 밑에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누렁이가 항상 낮잠을 잔다. 댑싸리 밑에 개 팔자라드니 참 그 말이 맞나 보다.


그 마당 아래로 채마밭이 있는데 봄에는 이 채마밭에 갖가지 푸성귀를 심는다. 그 중 드문드문 부룩을 친 옥수수는 자기의 큰 키를 자랑하듯 바람이 불면 점잖게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뽐낸다. 덩굴이 죽죽 뻗은 오이, 호박, 그밖에 갖가지 푸성귀들. 식전에 나가 보면 화장이나 한 듯이 번드르르하게 앞을 다투어 자기를 서로 자랑하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다. 나는 혼자 빙그레 웃는다.


큰 대문은 서쪽을 향해 있고 동네와 우물길 모든 통로는 작은 대문이다.

작은 대문을 열고 물동이를 이고 나가면 가지 하나가 옆으로 누운 대추나무가 마당 섶에 있다. 어떻게 그렇게 뻗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가지는 서쪽으로 곧장 직선으로 뻗었다. 그리고 다시 구부러져 올라갔다. 그래서 아이들은 거기서 그네를 매고 뛰기도 하고 우물에 가려면 꼭 그 대추나무 밑을 통과해야만 한다. 구부리지 않아도 닿지는 않건만 그 밑을 지나노라면 어쩐지 닿을 것만 같아 수그리고 지나간다.


내가 꽤 커서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긷는데 마침 가을대추가 벌겋게 익었을 때였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막내 고모는 물을 길러 대추나무 밑을 지나갈라치면 그대로 간 적이 없지. 꼭 대추 한 개를 똑 따먹고 가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단다.” 하셨다.

조금 비탈진 사래긴 밭을 갈라 걸으면 논두렁 길이 열십자로 놓여 있다. 걷던 길을 따라 걸으면 조그만 실개천이 나온다. 그 개천을 건너 논틀 밭틀을 지나면 우물에 도착한다. 외딴 우리 집, 그 아래 세 집 건너 외딴집 하나, 그렇게 다섯 집이 먹는다. 그리고 그 우물에는 좌우에 물동이를 올려놓고 마을 물을 퍼담을 수 있는 넓적한 돌이 놓여 있다. 물동이를 내려놓고 그 우물물을 바가지로 회회 저어 속에 있는 물을 퍼서 동이에 담는다. 그렇게 먼 곳에 가서 물 한 동이를 새로 길어다 점심때면 냉수로 먹는데 그 물 맛은 천하에 일품이다.


물이 깨끗한 우물 도랑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 새언니가 귀개를 잃어버렸다. 그 우물 도랑은 우리 새언니의 귀개를 꿀꺽 삼키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내놓지 않았다. 둘이 우물 도랑, 그 근방을 다 뒤져도 귀개는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 나는 철없이 쪼르르 앞서 들어가 엄마에게 “엄마, 새언니 귀개 잃어버렸어.” 하고 일렀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꾸짖지 않으셨다. 생각해 보니 너무 잘못했다 싶어 뒤늦게 새언니에게 “새언니, 내가 너무 잘못했어요.” 했다. 착한 우리 새언니는 “애기씨가 잘했어요. 내가 그 말씀을 어떻게 드릴 수 있겠어요.” 하는 것이다.

비록 나이 어린 올케와 시누이 사이였지만 싸움 한번 안 하고 살았다.

새언니는 일꾼이 길어다주는 물은 허드렛물로 쓰고 밥물, 숭늉 붓는 물 등 식수는 간간이 길어다 쓰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해놓고 꼭 냉수 한 동이를 새로 길어다 식수로 썼다.


우물에 또 사연이 있다.

이 우물에 물을 길러 가려면 사래 긴 밭을 가로 지른 길로 나가 열십자로 가로 놓인 좁은 길을 지나 실개천을 건너 구불구불 길을 걸어가노라면 일찍 나선 날은 이슬로 바지 가랑이가 젖었다. 어느 짓궂은 사람의 짓인지 어떤 때는 양쪽에 늘어져 있는 끄나풀을 마주 매놓은 것을 모르고 가다가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때 만약 물동이라도 깬다면 누구인지는 몰라도 얼마나 미울까.


이런 사연을 뒤로 하고 논 가운데 놓인 이 우물은 바로 삼발래로 벌려놓은 논 가운데 박우물이다. 삼발래란 우리 집 한 집, 아래 동네 두 집, 우물 건너 동네 한 집. 이 삼발래의 집 택호를 모두 모두 대 보자. 우리 집은 용살댁, 아래 집은 삼신댁, 또 한 댁은 오산댁, 우물 건너 한 댁은 겨르메기댁이다. 아마도 이 택호들은 용살댁은 용상굴에서 삼신댁은 삼선댕이에서 겨르메기댁 겨르메기에서 시집온 댁일 것이다. 옛날에도 복잡하면 이렇게 준말을 썼던 것 같다.

이렇게 일가들끼리 짜여진 동네 이름은 뒤꿈 말이다. 그곳에 자리한 이 박우물, 우물물 깊이는 2미터가 채 안 된다. 샘이 펑펑 솟는 것이 보이는 우물. 그런 우물물은 넘치지도 줄지도 않는 항상 같은 깊이. 홰홰 저어서 속에서 물을 떠먹으면 여름에는 이가 시리다.

그 우물 도랑에는 항시 똑같이 물이 흘러 내려간다. 물을 많이 길어가도 변함없고 안 퍼내도 넘치지 않는 우물 도랑. 물은 항상 같은 정도다.

어떤 우물은 나쁜 친구도 아무 생각 없이 마다 않고 받아들여 뿌옇게 흐리기도 하고 건수가 꾸역꾸역 들어와 먹을 수 없이 되기가 일쑤인 우물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길어다 먹던 이 박우물은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지조를 지킬까? 내가 본 이 박우물은 한 번도 지조 없이 군 적이 없으니 고맙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장마가 져서 실개천이 북정물로 넘쳐 건널 수 없이 물이 거세게 흘러가도 우물물은 건수도 한번 진 적 없다. 부옇게 흐리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이 우물물을 길어다 먹기 위해 겨울 따뜻한 날은 길이 지르르 미끄럽기도 하고 봄에 해토할 때는 밭이 쑥쑥 빠진다.

눈이 강산같이 쌓여 우물 길만 겨우 뚫어 놓고 다닐 때도 우물에 갈라치면 어서 오라는 듯이 그 우물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난다. 그렇다면 여름에는 그리도 시원하던 물이 겨울에는 왜 김이 무럭무럭나며 얼지 않을까? 그 원리는 무엇일까? 그 우물 도랑에서 냉수로 세수를 해도 얼굴이 안 시리다. 그래서 겨울에는 그 우물도랑에서 빨래도 하지 않았는가.

그 우물물을 길어다 밥 짓고 여름에는 감자를 두고 보리밥을 한 솥 자쳐 놓고 그 냉수를 길어다 먹는 점심 밥 맛과 그 냉수의 맛은 그 무엇과도 정말 안 바꿀 천하의 일품이다.


우리 집은 4대가 사는 대가족이고 이 우물물을 길어다 먹었다. 아버지는 구장을 보시고 일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일꾼(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었다.

우리 집에는 일을 도와주시는 분(머슴)이 항상 계셨다. 우물이 먼 관계로 아저씨는 식전에 물을 한 독씩 길어다 부어 주신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식전에 막걸리를 걸러서 우리 할아버지 한 대접, 그 아저씨에게는 한 양푼을 드린다. 그 분들은 1년에 한 번씩 당신이 사실 집을 바꾼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다 한번 오시면 1년 이상 3년도 사시곤 하신다. 아마도 그 술이 좋아서 우리 집에 오시면 몇 년씩 사셨나 보다. 나중에 안 일인데 그 술 때문에 우리 집에 사시는 분은 만족해하셨다 한다.


지금은 집집마다 자가 수도에 정수기까지 놓게 되어 그 우물은 아무도 먹지 않는다 한다.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하는 수 없었다. 필요치 않게 되면 사람도 값어치가 없고 쓸모가 없는데 과거에 아무리 물맛이 좋았던들 그 시대가 갔으니 말이다. 정말 그 시대가 지금도 그리워진다. 모든 것이 다 변했다 해도 그 우물은 그냥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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