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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Mar 10. 2022

김홍도의 <서당> 그림에
내가 들어 있다.

그림 속에 글 속에 숨어 있는 아이의 마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회화를 보면서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 글쓰기를 해요. 아이들 생활과 가깝기도 하고 친근하여 김홍도의 <서당>을 선택했어요.  

▲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중 <서당>,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머리에 갓쓴 사람 보이지, 결혼도 하고 나이 많은 사람부터, 여기 뒷모습만 보이는 아이 봐봐. 이 아이가 가장 어린 것 같아. 서당에는 이렇게 나이 차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를 했어. 다 웃는데 이 아이는 뒷모습만 보이잖아. 어떤 표정일까?" 

"안타까워하고 있을 것 같아요."

"원래 막내들이 착해요. 콩쥐팥쥐도 그렇고, 신데렐라도 그렇고, 아기 돼지 삼형제도 그렇고. 막내들이 다 잘 되잖아요."

"오, 그러네. 책에서 그런 공통점을 발견하다니, 대단한데."

책을 보고 막내들이 착한 것을 분석해내는 게 신기했어요.

"근데 얘는 막내인데도 안 그래요."

소리에 민감하고 뭔가 똑바로 되어야 마음이 놓이는 아이를 가리켰어요. 먹을 거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잘 양보하지 않거든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 아이 몸이 살짝 굳더군요. 순간 저도 당황했어요. 제 생각보다 더 많이 그 말에 상처받은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아냐, 막내들은 위에서 형들을 막아내다 보면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어.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어."

내 말이 끝나자 아이 얼굴의 근육이 풀어지면서

"그래. 막내들은 그래야 살아남아." 하더라구요.

다행히 아이들이 "아. 맞아." 하며 수긍해 주었어요.

휴우, 친구들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막내 때문에, 저도 순간 긴장했어요. 언제 이런 대화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에요.

이녀석까지 수업을 듣고 싶어 해서 더 신경 쓰였지요.ㅎㅎ


글쓰기를 해보면 그림에서 주인공을 정하는 것도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성격이 잘 드러나요. 서당에 나오는 인물을 정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막내의 긴장이란 제목으로 글을 쓴 아이는 처음에는 어울리는 걸 어려워하고 공부 내용을 같이 읽는 것도 쭈삣거렸어요. 다음 수업부터는 조금 더 편안해지고 글 읽는 것도 빼지 않고 곧잘 읽었지요. 그래서 "그동안 글 읽는 연습했나 보다. 저번 수업 때보다 훨씬 잘 읽는걸." 하고 칭찬해주었어요.

그 아이 글의 일부예요.


'아, 너무 긴장돼.' 

이 생각이 제일 들었어...나는 저번에 맞은 형이 엄청 아파 보여. 나는 요번 1년이 무사히 넘어가기 바라고 무사히 넘어갈 거라고 가족들이 응원했지만 3일째부터 맞으면, 작심삼일이 되고 친구들과 형들이 놀릴 게 뻔해...내 차례가 되었지. 훈장님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했지. 

"못 찾겠다, 꾀꼬리." 

휴, 12번 외우고 5분이 지나서 들어갔어. 나는 외웠지.

"완벽하게 외웠어!" 훈장님이 말했어.


걱정은 되지만 자기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어요,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잘 공감하고요. 딱 그 아이였어요. 


아이의 생각

내가 그 아이라면 꼭 외워와서 매를 안 맞는 게 정말 낫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도 맞는 말이다.


적극적이고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는 아이의 글에 들어 있는 문구예요.


훈장님은 때리고 나서

바로바로 훈장님도 때리고 싶지 않아요. 훈장님은 때리고 싶지 않은데 왜 때릴까요? 그 까닭은 훈장님이 아이들, 친구들을 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해서 그랬답니다.


이 아이 바른 길 사나이에요. 아이들에게 틀린 거 지적, 엄청 많이 합니다. 그 마음을 알겠어요.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고 싶은 훈장님 마음이라는걸요. "너가 그렇게 지적질하면 친구들이 싫어할 텐데." 라고 살짝 돌려 말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말해주어야겠어요. "너가 훈장님 마음이었구나. 그래도 너도 지적질 받으면 싫찬아. 지적질하지 않고 친구들을 바른 길로 이끌 방법을 생각해보자."

끝부분에 에필로그 100년 뒤 훈장님은 인간 치킨이 된다, 라고 썼더군요. 다음번에 무슨 말인지 물어봐야겠어요.


훈장님이 줄시를 못 외웠냐며 종아리를 맞아야겠다고 하셨다. 근데 종아리를 건드렸는데, 눈물이 둑!둑!둑! 흐른다. 그리고 종아리를 맞고 생각했다. 다시는 종아리를 맞기 싫다.


종아리를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흐른 아이예요.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 잘 챙기고, 근데 겁이 엄청 많아요. 박물관의 어두운 곳을 다닐 때 제 옆에 꼭 붙어서 다녀요. 좀더 어두운 곳에선 손을 잡고 가지요. <엔칸토> 만화영화의 노래를 다 외우고 미라벨과 같이 울어주는 아이입니다. 그 친구와 "꼭 미라벨이 마법을 찾아야 했을까, 마법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다가 마법을 찾고 행복하게 끝나는 게 좀 그렇다." 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공개 커플인데, 이번에 무서움을 참고 조금 높은 곳을 올라갔어요. 여자 친구가 말했어요. "우와, 잘했다. 그렇게 무서움을 하나씩 극복하는구나." 이녀석 씨익 웃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남친은 어떤 역할을 하냐고 물었더니 '지켜주는 거'랍니다. 웬만한 어른보다 성숙합니다. 


아이의 슬픔

'나도 외울 수 있었는데...'

'계속 어제 놀아서 하느님이 벌 주신 걸까?'

'힝, 회초리 맞기 싫은데...'

'엄마가 오늘 잘 외우면 팽이 사준다 했는데.'

'히잉...아파...!'

'빨리 집에나 가야지.'


생각이 많은 친구입니다. 설명이 끝나면 자기 나름대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고 혼자 가서 오래 구경하고 그럽니다.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슬쩍슬쩍 물어보지요.


짧은 글이지만 아이들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학습에도 무척 중요하지만 학습을 떠나 아이들에게 많이 필요합니다. 아직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잘 모르고(?) 알아도 어떻게 표현하는지 잘 모를 수 있거든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지요. 고학년이 되면 자기 마음을 숨기고 글을 쓰기도 하지만 저학년들은 아직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거든요. 


분명 울주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부터, 고구려의 고분벽화, 고려의 불화, 조선의 인물화 산수도 동물화 풍속화 민화 등 우리나라 미술의 역사와 그림에 담긴 비밀들을 알려주었건만,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가서 비둘기와 논 이야기만 합니다. 왜 아이들은 공부한 이야기는 안 하는 걸까요, 하하. 

수업을 한 선생으로서 민망하지만 어쩌겠어요. 아이들이 즐거우면 되지요. 

그래도 오늘 수업에서 한 가지는 챙겼을 겁니다.


그림 속에는 그린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걸 잘 읽어낼수록 그림을 잘 보는 거고, 좋은 그림을 알 수 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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