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이 좋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사와동화 Jul 14. 2022

시인 X

시인 X의 매력_글이 가진 힘

시인 X의 매력_글이 가진 힘

『시인 X』엘리자베스 아체베도/황유원/비룡소


『시인 X』를 읽었다. 시로 쓰여진 소설이다. 정제되고 정확한 ‘감정 표현'이 놀랍다. 주인공은 청소년, 말은 없지만 안에는 불화산을 갖고 있는 내면의 힘이 강한 십대 여자 아이다. 시오마라라는 주인공이 '시인 X'가 되고, 어떻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거기에 생각이 자꾸 머물렀다.


첫째. X가 되기 전 시오마라는 어떤 사람일까?


‘시오마라’는 할렘 가에서 살아가는 도미니카계 미국인, 십 대 여자아이이다. 덩치도 크고 가슴이 커서 외모에 대한 편견에 시달린다. 집 밖에서는 쉽게 성추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시오마라는 “나는 내 피부를 내 몸집만큼이나 두껍게 만들어 왔다. 그리고 내가 빨랫줄에 걸린 젖은 셔츠처럼 누가 입어 주기만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페로, 투 노 에레스 파실.-너는 참 쉬운 애가 아니구나.” 하는 말을 듣는다. 모서리에 세게 내리친 달걀처럼 자신을 깨부수고 싶고, 매일 체로 걸러진 밀가루처럼 문을 통과하는 수 백 명 중 한 명이다.


10학년은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독한 한 마리 새우 같은 기분이다.

벗겨서 으스러뜨릴 수 있는 부드러운 껍질을 지닌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이들로 붐비는

물결 속에 담긴 기분.(71쪽)


아버지보다 큰 키에, 어머니로부터 “몸집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야기를 듣는 시오마라는 자기보다 약한 쌍둥이 오빠를 위해 거친 역할을 담당한다. 수녀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신앙의 엄격한 규율을 들이대며 시오마라를 구속한다.



둘째, 시오마라를 억압하는 사람들이 있다.


1. 엄마


시오마라에게는 “하늘의 가장 큰 태양”이자, “환하고 눈부신 빛으로 나의 심지를 다 태워 버리는 사람”. 도미니카에서 온 어머니는 한때 수녀가 되길 꿈꾸었던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시오마라를 엄격한 교리로 얽매려 든다. 시오마라에게 엄마는 커다란 두려움이다. “엄마는 내게 죄의식을 불러일으켜서 순응하게끔 만들곤 한다. 그 수법은 보통 먹힌다.”


당신의 입술은 나를 재빠르고 단단히 꿰뚫는

스테이플러 심이 아니던가요.

그리고 내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단어들은

그냥 내 혀에 남아 있는 편이 나아요.

왜냐하면 그것들은 닫힌 문과도 같은 당신의 등에

쿵 부딪혀 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당신의 침묵은 집에 어둠을 들여요.

하지만 불에 타 버릴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방은 늘 빛을 향해 날아가죠.(322쪽~323쪽)


엄마가 딸을 본인 꿈의 대리자, 스스로 옥죄는 여성의 자리에 놓으려 할 때 끔찍한 결과가 나타난다.


2. 수근대는 주변 사람들, 치근덕 대는 아이들은 여기서는 무리들로 다루어져서 구체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오마라의 고통을 더 크게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셋째, 시인 X가 되었다, 어떻게?


1. 쌍둥이 오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시오마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자유롭고 독창적인 시 형태의 일기로 풀어나간다. X는 주인공의 이름 시오마라(Xiomara)의 머리글자이며, 시오마라가 시인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붙인 상징적인 별칭이다.

그녀의 글쓰기는 쌍둥이 오빠의 애정에서 시작한다.

“누군가가 내게 생각들을 모아 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빠는 나의 생각들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쭉 글을 써 왔다. 때로 글쓰기는 나 자신을 상처로부터 지켜 내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63쪽)”


“오빠가 수상 이력이 있는 양장본이라면 나는 꿰매지 않아 흩어진 텅 빈 페이지들이다.(140쪽)”


시오마라가 아만과 키스했다는 소리를 들은 엄마가 격노해서 시 노트를 불에 태우고, 시오마라는 집을 나가 아만을 찾아간다. 다음날 오빠는 학교에 찾아와 아만과 함께 나오는 시오마라와 함께 집으로 간다.


“내가 그를 쳐다보는 걸 본 쌍둥이 오빠는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더니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우리도 껴안은 채 몸을 흔든다.(460쪽)


2. 카리다드


카리다드는 신앙심이 깊고 결혼이 아니라면 남자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다. 시오마라와는 너무 다르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 곁에서 늘 걱정하고 지지해 준다.

카리다드가 자주 하는 말, ”그 문제는 네가 알아서 잘 해결하리라 믿어.“ 이 말이 진심이다.


쌍둥이 오빠와 카리다드는 X가 엄마와 맞서야 할 때 “비록 그들 중 누구도 나를 위해 엄마와 싸워 줄 순 없겠지만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안다.(458쪽)


X는 쌍둥이 오빠와 카리다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리고 지혜를 발휘해 자신을 도울 사람을 찾는다. 바로 션 신부님이다.


3. 션 신부님


션 신부님은 X에게 있어 처음엔 자기 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신앙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어린 시절 내내 사귄 친구 같다고,

엄마에게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너무 새롭게 느껴지고, 너무 자주 불쑥 찾아오고

문자메시지를 너무 많이 보내는 친구.

더 이상 필요한 것 같지 않은 친구 같다고.

(나도 안다. 알아...심지어 이렇게 쓰는 것도

신성모독이라는 걸)(25쪽)


신부님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 뒤에 X는 깨닫는다.


신부님은 내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 그 미소는

신부님을 더 젊어 보이게 만든다...

평생 알아왔던 누군가를 쳐다보다가

그 사람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서

재구성되는 듯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209쪽)


나중에 X는 엄마와 자신의 중재자로 신부님께 도움을 구한다.


4. 갈리아노 선생님


시오마라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줄 두 사람이 나타난다. 먼저 시 모임에 오라고 지치지 않고 권유하는 갈리아노 선생님이다. 갈리아노 선생님은 큰사람처럼 행동한다....자신에 대한 억측들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익숙한 사람처럼.(57쪽)


*이 포스터는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내게 곧장 배달된

정중한 초대장처럼.(98쪽)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선생님은 내게 그 표정을

지어 보인다.

누군가가 모르는 사람을 평가할 때 지어 보이는 표정.

망가진 시계의 재깍거림을 해석해보려는 사람이 지을 것

같은 표정을.(109쪽)


*그리고 그들의 말은 가스레인지에 붙는 불과도 같아서

불이 붙길 기다리는 동안 딸깍, 딸깍 소리를 내다가

마침내 커다랗고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곤 한다...

내가 갈리아노 선생님의 쪽지를 봤을 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154쪽)


결국 시오마라는 성당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엄마를 속이고 시 모임에 간다. 그리고 점점 X가 끄적인 말들은 시의 형태를 갖춰 가고, 어느새 그 시들은 밖으로 나오고 힘이 생긴다.


*시 모임에서의 첫 번째 만남

정말 작은 순간들이 언젠가 우리를

쓰러뜨릴 목적을 가지고

도미노처럼 줄지어 서 있다는 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354쪽)


*오늘 밤에 들었던 시 대부분은 조금씩 다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들렸으니까.

우리가 봤거나, 우리가 직접 경험한 일들처럼.

그러니 만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안겨 줬다면,

그건 정말 죽여주는 일 아니었을까? (387쪽)


선생님의 권유로 시 슬램 대회에 참가하게 된 시오마라는 자신의 시를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낭독한다. 그저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로만 들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관중의 환호와 박수와 함께 사라지고, 시오마라는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좋은 어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션 신부님은 질문을 던지는 게 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갈리아노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오마라를 설득한다. 시오마라의 부모도 돌이킬 줄 아는 부모라서 다행이다. 엄마 그늘에 가려져 있던 아버지도, 시오마라를 억압했던 엄마도 나중에는 응원을 보낸다.


5. 아만


첫사랑 아만을 만나고 시오마라는 크게 변화한다. 연애만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다. 아만에 대한 감정이 점점 커진다.


*만일 내 몸이 컨트리클럽의 소다수 병이라면

그건 흔들린 채로 떨어진 병일 것이고,

그 병은 언제라도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며

망할 온 세상을 깜짝 놀래 주고 말 것이다.(148쪽) 

    

*그는 한 편의 소네트가 되기에는 충분히 우아하지 못하다.

한 편의 자유로운 글이 되기에는 너무 생각이 깊다.

그리고 한 편의 하이쿠가 되기에는

내 머릿속에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150쪽)


*내 몸 안에 있는 성냥에

불을 붙이는 그의 손.(178쪽)


더군다나 좋은 사람과의 연애는 부쩍 성장하게 한다. 아만은 무척 좋은 아이다.


아만은 이전 고향인 트리니다드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아이이고


할머니 집 뒤에 있던 야자나무,

뒷마당에 시어진 망고의 맛,

누군가 입을 열 때마다 들려오던 노랫소리.(159쪽)


오지 않는 엄마를 이해하는 아이이다.


엄마는 매년 내 생일마다 전화를 해.

나는 엄마한테 언제 오냐고 더는 묻지 않아.

아빠와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으니까.


나는 화내지 않는 법을 배웠어.

때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놓아주는 것이기도 하거든.(160쪽)


X의 시를 처음 들어준다. X는 아만 옆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질문은 아치 모양을 한 그의 양쪽 눈썹을 가로지르며

소형 비행선처럼 떠다니고 있다.(438쪽)


아만은 함부로 묻지 않고 욕망을 조절할 줄 알고 허세를 떨지 않는다. 아만은 X에게 시를 써 준다. X에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써 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너처럼 훌륭한 시인은 절대 못 될 거야, 시인 X.

그리고 난 네가 너 자신과 나를 동시에 지켜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나 널 보살펴 줄 거야.(479쪽)

언제나 네 마음을 지켜 줄 거야.”


X는 말한다. “난 이보다 더 완벽한

만점짜리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480쪽)”


『시인 X』는 빠져들면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된다. 이렇듯 잘 읽히고 힘이 있는 데는 이 책을 쓴 엘리자베스 아체베도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일 것이다. 또 시인인 황유원 옮긴이의 역할도 컸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사이 번역되지 않은 스페인어들이 처음에는 좀 거슬렸는데, 계속 읽다 보니 장소에 대한 환기와 더불어 이민자인 시오마라를 더 잘 이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도 울림이 있다.

“시오마라의 이름은 'X'로 시작한다. X는 곧 부정의 상징이다. 틀린 것에 ‘그건 틀렸다’며 과감히 X표를 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시인 X’가 지닌 무한한 힘과 매력이다. 이 책을 읽을, 아직은 나이 어린 독자들이 “자신에 대한 억측들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는 데,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기도 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실을 깨닫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역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다.“



다섯째, 시인 X의 매력은 무엇일까?


쌍둥이 오빠와 카리타드는 언제나 시오마라의 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오마라는 더 많은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인다. 우연의 일치일까? 시오마라에게 인복이 있는 걸까? 시오마라의 매력은 뭐지?

사실 글을 통해 보면 시오마라의 주변에는 엄마를 빼고는 시오마라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은 개인으로 보다는 집단으로 나타나서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갈리아노 선생님처럼 지치지 않고 설득할 선생님을 만날 확률은 몇 프로나 될까? 시오마라처럼 남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아이가 아만 같은 남자애를 사귈 확률은? 우연히 짝이 되고 연인이 될 가능성을 잘 잡은 거라 해야 하나. 결과는 나쁘지 않지만 첫사랑을 찾는 자세는 아쉽다. 오빠를 위해 대신 나서서 싸워주고 반항에 가득차 보이는 아이치고는 첫사랑조차도 너무 우연에 기댄 것 아닌가, 조금 더 자기 자신의 삶에 능동적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시인 X』는 어쩌면 일기와 시로 쓰여진 글이라서 우리는 시오마라의 감정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더 시오마라를 지지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일기와 시가 아니었다면 시오마라가 이만큼 매력적이었을까? 내용을 전달하는 데 있어 형식도 무척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오마라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시오마라는 사람들을 정확하게 본다.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는다. 자기 식대로 요구하지도 않는다. 척하지 않고 아부하지 않는다. “안 돼.”라는 말에 질문을 던지고, “만일 나의 삶을 내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신이 내게 주신 생명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고 계속 고민한다. 누구나 이렇게 순간순간 고통스럽고 부딪치는 힘든 자기 인생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시오마라에게는 더군다나 한 방이 있다. 시오마라는 싸울 줄 안다. 엄마가 시 노트를 태울 때 말한다.


“나를 태워 버릴 거예요? 나도 태워 버릴 건가요?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나도 태워 버리겠죠, 안 그래요?”(422쪽)


결정적으로 시오마라는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엄마에게도. 

이전에는 힘으로 싸웠다면 시를 쓰면서부터는 자기 목소리로 맞선다.


노트가 불에 탈 때 시오마라는


나는 다시는 절대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는 절대

누군가가 내 마음을

전부 들여다보고

망가뜨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426쪽)


라고 했지만 이것도 극복해 내었다.


자기의 고통을 이겨 내고 자신만의 고유의 색을 가진 사람은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그 매력에 저절로 끌린다. 솔직함과 진지함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 말도 스스로 X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든 자가 세상 앞에 당당히 서서 하는 힘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내가 아는 건, 나 자신의 말이 지닌 힘을 믿을 수 있게 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험이었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내게 더없이 큰 빛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시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487쪽)


한 사람의 인생을 매력적으로 바꾼 글이 가진 힘, 괜히 뿌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펀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