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이 좋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사와동화 Mar 24. 2023

펀홈

아버지의 영향력

펀 홈 : 가족 희비극  움직씨 만화방 2

앨리슨 벡델(지은이)/ 이현(옮긴이)/ 움직씨/ 2018-10-16/ 원제 : Fun Home: A Family Tragicomic (2007년)


책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나까지 써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 일기처럼 기록하는 마음으로 써보기로 했다. 최근에 앨리슨 벡델 책을 읽었는데, 자꾸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은 자신이 게이인 걸 밝히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던 아버지와 자신이 레즈비언인 걸 밝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딸의 이야기다. 그 과정에 예술과 문학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서 그렇다고 아버지는 이야기하지만...용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평판에 맞서 싸워나갈 용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그냥 있는 것은 없다. 멈춰 있는 것은 뒤로 가는 것이다. 결국 자신과 가족을 괴롭게 만들었다.


딸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자신의 속을 털어놓는 아버지.(끝까지 솔직하지 못하다. 솔직함은 생각보다 인생에서 큰 힘을 갖는다.)


아버지는 나한테 비밀을 털어놓는 대신, 내가 벌써 다 알고 있을 거라 가정하는 소설적 접근법을 택했다. 정작 나는 아버지가 편지를 쓸 당시까지 진실을 몰랐는데도 말이다. 


<네 엄마는 네가 선택을 열어두길 바라는 것 같구나. 나도 그 입장에 동의하는데, 아마도 이유는 다를 거다. 물론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누구를 위해서 그러겠니? 입장을 두둔하는 건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야.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몇 번인가, 나도 앞으로 나설 걸 그랬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단다. 하지만 젊었을 땐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어. 사실 서른 전에는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때는 세상이 지금과 달랐던 게 사실이지 않나. 마흔넷이 된 지금에 와선 젊을 때 그랬다고 해도 뭔가 좀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217쪽)


아버지는 줄곧 거기에 있었다. 벽지를 바르고, 묘목 심을 땅을 파고, 지붕 장식에 윤을 내고... 톱밥 냄새와 땀 냄새, 독특한 향수 냄새를 풍기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아이처럼 마음 한구석이 늘 아팠다.(29쪽) 


어쩌면 꾸밈은 처음에 위장이었더라도 하나하나 철저하게 진짜를 모방하다 보면 결국...진짜가 되어 버리는지도 모른다.(66쪽)


어찌 보면 아버지의 끝은 내 시작이라 할 수도 있다. 더 정확히 쓰자면 아버지가 버텨 온 거짓의 끝이 내 진실의 시작이라고 해야겠다.(123쪽)


물고기 한 마리 없는 개울에 발을 담그고 연어색 하늘에 넋을 잃으며, 나는 역설을 몸소 터득했다.<일요일 아침>에서 윌러스 스티븐스가 썼듯 "죽음은 아름다움의 어머니"라는 것. 그림 같은 풍경에 둘러싸여 자라다 보니 나도 시에 도취되었다. 일곱살 때였다. 아버지한테 보여드리자 아버지는 즉석에서 둘째 연을 지었다. 그 솜씨에 기가 죽은 나는 내 글에 아버지의 문장을 덧붙여 썼다. 그러고는 수채화로 우중충한 석양을 그려 넣었다.(135쪽)




  재능이 뛰어난 부모 밑에서 아이가 겪는 좌절. 그러나 결국 벡델은 그 재능을 발휘한다...부모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타고난 재능이 그를 붙잡은 것일까...계속 부모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느낌이다. 


흔히 슬픔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들 한다. 개중에는 슬픔의 부재도 있다. 

생기 넘치고 열정적이었던 우리 아버지가 무덤에 누워서 부패하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우스운 일이었다.(233쪽)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20대였는데,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이상하게 봐서, 그때 웃었던 걸 깨달았다. 왜 그랬을까...의문이었는데, 벡델도 그랬다. 슬픔의 부재였구나. 

펀홈의 끝장면이다. 벡델은 아버지를 "내가 뛰어들 때 날 잡아주려고 거기에 있었다."로 마무리짓고 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를 결국은 이렇게 추모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어찌 보면 자녀들이 부모를 봐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아버지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만난다. 벡델도 그렇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행복했던 사람은, 아버지의 부재에 그만큼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유전적 요인은 열외로, 그만큼 사랑도 철학도 물려받은 것이 없는)  나는 그렇게 힘들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하면서 웃플때가 있다. 무엇을 주려고 애를 쓰진 않았지만, 결국 영향을 미친...인간 대 인간으로 보면 안스러울 때도 있다.(아버지는 자기 자신 혼자 살아내기에도 벅찬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장하는 법을 몰랐다.)  

책을 읽는 동안 벡델이 괴롭다고 말하는 것도 부러웠다. 아버지에게서 부정적인 영향도 받았겠지만, 벡델 성장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가 물려준 지적인 경험으로 가득차 있다. 어떤 형태로든 작가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최소한 에피소드라도 많지 않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