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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Apr 04. 2023

대한민국 치킨전

정은정/ 따비/ 288쪽/ 2014-07-10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 따비 음식학 1     


우리가 어떻게 치킨을 먹게 되었고 산업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가의 이야기다.     

  

1. 책의 내용(책소개에서 가져왔다.)

    

산업이 선택한 소울푸드, 치킨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치킨 맛, 백숙이나 삼계탕, 전기구이통닭과는 차별되는 튀김의 기름 맛은 한편, 한국의 산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외식 메뉴로 정착하려면 닭이 더 이상 귀한 식재료가 아니어야 했다. 농가에서 달걀을 얻기 위해 한두 마리 키우는 것이 아닌, 전용 축사에서 수천, 수만 마리를 키우는 산업형 축산으로 양계가 정착한 데는 1960년대 복합사료공장이 세워진 덕이다. 튀김옷의 재료인 밀가루는 진작에 미국의 원조로 풍부한 상태였고, 남은 것은 닭을 튀길 만큼 풍부한 기름. 비록 조각을 냈다고는 하지만 작지 않은 크기의 닭을 솥에 넣고 튀겨낼 만큼의 풍부한 식용유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음식이 바로 후라이드치킨이다. 그리고 그런 요리법을 가능하게 하고 바깥음식으로 팔릴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미국의 곡물복합체가 주목한 콩의 양산과 국내의 내로라하는 식품기업이 생산한 식용유였다.

한편 대두에서 식용유를 추출하고 남은 대두박은 가축에게 먹일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았는데, 결국 우리가 먹는 치킨은 콩을 사료로 먹고 자라 콩기름에 튀겨진 ‘콩닭’이다. 지금은 콩보다 더 활용가치가 높은 옥수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옥수수 씨눈에서 기름을 짜내 닭을 튀기고 그러고 남은 옥수수는 닭의 사료로 먹이며, 양념치킨의 핵심 재료인 물엿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것이니 콩닭은 이제 콘닭으로 진화했다.     


완전경쟁 시장 치킨 프랜차이즈와 독점시장 양계 사이에서

조촐한 회식자리의 만만한 메뉴이자 독신자들의 끼니로 자리 잡은 치킨이지만, 한 마리의 치킨이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마케팅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완전경쟁 시장이다. 브랜드 인지도 1위의 치킨 프랜차이즈조차 시장 점유율 10퍼센트를 겨우 차지하는 것이 치킨 시장이다. 치킨 브랜드 간의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 수준이고, 그 최전방에서 선 치킨점 ‘사장님’들은 때로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에 눈물짓고, 때로는 ‘알바느님’ 모시기에 노심초사하고, 왜 ‘5,000원짜리’ 치킨을 팔지 않느냐는 소비자의 눈총에 한숨 쉰다.

반면 그 치킨의 원재료인 닭은 기업의 수직 계열화가 거의 완료된 상태라 상위 5개의 대형 육계기업, 그중에서도 1등 양계기업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시장이다. 양계기업의 하청 노동자나 마찬가지인 양계 농민의 처지도 갑의 횡포에 우는 건 치킨집 사장님과 다름없다. 계열 본사의 기준에 맞추느라 최신식 계사를 지어야 하고, 본사의 상대평가에 따라 사육수수료는 적절한 수매가격에 미치지 못하고, 해마다 반복되는 조류독감에 키우던 닭은 물론 사료까지 파묻어야 하는 것이다.     


2. 책의 내용을 더 알 수 있는 문구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유독 치킨을 사랑해서 치킨집이 많은 것일까? 치킨이 1등을 하기 시작한 1997년은 한국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시기와 딱 맞아 떨어진다. 즉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쏟아져나와 치킨집을 차렸고 차릴 수밖에 없었던 때다. 산이 저기 있어서 올라갈 뿐이라는 어느 등산가의 말처럼, 치킨집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고 보면 맞다. 먹다 보니 습관이 됐고 중독이 됐을 뿐.(18~19쪽)


크리스마스가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종교와 상관없이 온 국민이 ‘누리는 날’이 되었고, 소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시즌’이 되었다. 누리는 방식에서 가장 대표적인 의례는 통닭을 먹는 것이었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은 자신들의 제일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 때 고국에서 공수한 칠면조요리를 먹었다. 하지만 미군(국) 밖의 우리는 칠면조를 먹을 방법이 없고, 크리스마스는 미국식으로 기념해야겠어서 ‘칠면조 대신 치킨’을 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처럼’ 우리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그리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면 바로 ‘치킨’이었다.(43쪽)     


프랜차이즈 치킨점 창업에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100만 원짜리 과외와 10만 원짜리 동네학원 수업으로 진입할 수 있는 대학 레벨에 차이가 나듯, 치킨점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다면 메이저 브랜드 치킨점을 차리지만, 그 사다리의 끝에는 노점 형태의 ‘닭강정’과 ‘장작구이통닭’이 있다.(87쪽)     


치킨의 참을 수 없는 느끼함은 탄산으로 극복되어왔고 중독되어왔다. 콜라와 맥주의 도움으로 ‘1인 1닭’도 가능해졌다. 탄산음료는 짜릿하게 식도와 혀를 자극, 혹은 마비시키면서 계속 치킨을 먹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음료이기도 하다. 치킨을 시키면 이제 굳이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콜라가 따라온다. 백반을 시키면 김치가 당연히 나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콜라에서 멈추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추가로 맥주를 시키게 될 것이다. 콜라는 맥주를 부르는 가장 강렬한 유혹의 ‘매개’이다. 콜라의 탄산과 맥주의 탄산이 톡 쏘는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195쪽) (콜라와 맥주도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공급한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1,000마리의 병아리로 쩔쩔매는 시대가 아니라 수만 마리를 키워내는 시대가 되었지만 양계 유감은 끝나지 않았다. ‘만용이’가 하던 일을 이제 이주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1인 1닭 시대이지만 양계 농민들의 처지가 나아지진 않는다. 양념 치킨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양념 채소를 키우는 농민들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은 것처럼.(273쪽)


3. 우울하다. 나는 어떻게 하지? 


치킨 가게를 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지만(나는 할 깜냥이 안된다는 걸 안다.) 이 책을 읽고


치킨 프랜차이즈로 치킨 가게를 내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 업체를 안 끼고 살아남기는 더 힘들다. 이 책만 읽어도 선뜻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를 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몰리는 게 현실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렇게 정리가 된다. 책을 덮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처음부터 이 책은 ‘치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치킨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시작한 것이었다. 치킨을 누가 튀기고 먹는지, 그리고 닭은 누가 키우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라고 썼다.

  

<라면의 재발견>과 같이 읽었는데 <라면의 재발견>을 읽고 나서는 라면이 급 댕겨서 아침을 기다려 끓여먹고 말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치킨을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책을 내며에 쓴 작가의 말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어느 날 진도 팽목항에 놓인 치킨을 보고 말았다. 자녀의 생환도 아닌 주검 수습을 애타게 기다리며 부모들이 차려놓은 음식은 치킨, 피자, 과자 등이었다.”

여서 차마 그럴 생각이 안 난지도 모른다.     


어쩜 책의 끝에 있는 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맛있게 먹고 그걸로 끝인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면서 우리 또한 맛의 지옥에 갇힌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의 고통을 치맥으로 달래다 결국 치킨집 사장님의 삶에서 내 미래를 간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오늘 한 마리의 치킨과 한 잔의 맥주가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273쪽)


한번도 치킨집 사장님의 삶에서 내 미래를 간 보고 있던 적은 없었지만, 치킨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내 미래를 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구조적이고 첨예한 이권 다툼 속에서도, 나는 치킨을(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그리 땡기지 않지만) 시켜먹는 그렇고그런 존재구나, 라고 느꼈던 걸까.


그러나 어차피 먹어야 할 거라면, 지은이의 말대로 “가급적이면 배달 앱으로 주문하지 말고 단골 치킨집에 직접 전화해서 시켜 먹는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남길 것 같으면 치킨 무도 많이 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도의 실천은 가능할 것 같다.  소심하게 이걸로 위안을 삼는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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