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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Apr 04. 2023

테오도루 24번지

손서은/ 문학동네/ 208쪽/ 2016-01-29

제6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 문학동네 청소년 35

         

1. 테오도루 24번지에는 이런 사람들이 산다.


* 민수: 열여섯. 민수의 엄마는 고등학교 때 민수를 낳고는 바로 사라졌고, 아빠 혼자 민수를 키우다 여섯 살 때 “2년이야. 아들, 2년은 금방이야.”라며 민수를 보육원에 맡겼다. 그리곤 5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났다. 민수와 아빠는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그리스로 이주해 왔다.      

* 민수의 아빠: 민수가 보기에 ‘나보다 여리고 약한 남자. 자기 인생도 어쩌지 못해 늘 초조하고 불안한 어른’이다. ‘아무한테나 친절하고 남이 고생하는 꼴은 못 보는 남자.’다.     

* 요나: 그리스로 밀입국한 흑인 소년 요나는 막냇동생 같은 딸을 가슴에 매달고서 ‘짝퉁’ 가방을 팔며 살아가는 미혼부다. 아테네의 시장 거리와 난민 캠프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 레오니스: 16년 동안 보육원에서 지내다 아버지의 바소 가족을 찾아왔다. 그리스 국보급 미남이다.

* 디미트라: 바소 가족의 첫째 딸이자 테오도루 아이들 사이에서 할 말을 다하는 당찬 아이다.

* 마르타: 기 센 언니에 눌리고 동생에게 휘둘리지만 결코 기죽지 않는 둘째다.

* 콘스탄티노스: 바소 가족의 막내아들이자 ‘똥돼지’가 별명이다. 레오니스가 오자 가출한다.    

* 빌루 부인: 동네 말썽꾼인 세 남매와 죽은 남편의 아들 사이에서 하루도 맘 편할 날 없는 아줌마. 죽은 남편의 사생아인 레오니스를 한 팔로 끌어당겨 포옹한다.

 

이들과 엮이면서 민수는 마음속에 꽁꽁 얼려 두었던 다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기억과 상처 때문에 괴롭기도 하고 그들과 합류하게 된 파티에서 돌아오던 밤, 함께 집으로 돌아갈 이웃이 있다는 건 꽤 안심되는 일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그게 얼마나 치사한 건지 어떻게 알겠어. 가족이 가족을 버리고 배신할 수 있다는 거.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내게 더 끔찍한 건 말이야, 그다음이야.

세 번째 버려지는 순간. 아직은 오지 않은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186쪽)     


이웃들과 어울려 지내는 사이, 민수는 묻어 두었던 자신의 상처를, 옆에 앉아 “친구, 그냥 사는 거야.”라고 말해 주는 친구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민수는 요란한 이웃들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절망에서 빠져나오고 함께 뒤섞여 일구어 낸 행복을 알게 된다.    

      

가족이 갖고 싶다고? 어쩌면 녀석에겐 돌아갈 집이 생기지 않았나.

테오도루 24번지. 빌루 가족의 집, 그리고 나와 아빠의 집 말이다.(188쪽)   

       


2. 남의 나라에 있는 아이라서 그런가.   


<창밖의 아이들>과 같이 읽었는데 그 책의 주인공 란이는 걱정이 되는 데 비해, <테오도루 24번지>의 민수는 걱정이 되지 않는다. 둘다 앞날이 그리 장밋빛은 아닐 테고, 우리나라보다 그리스의 상황이 더 안 좋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낙원동 영구임대 아파트보다 테오도루 24번지가 더 낫지도 않다. 테오도루는 ‘신의 선물’이란 이름의 뜻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테네에서 가장 구석지고 허름한 거리다. ‘웰컴 투 그리스’라는 광고 문구 아래로 굳게 닫힌 셔터, 거칠게 휘갈겨진 낙서와 그라피티, 침낭과 신문지를 뒤집어쓴 노숙자들이 그리스의 쇠퇴를 낱낱이 보여 주는 곳이 바로 테오도루다.


민수는 마음껏 말할 상대인 아빠가 있고 란이는 그런 가족이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테오도루 24번지는 따뜻한 공동체 같다.  

테오도루 24번지에는 품는 어른이 여러 명 나온다. 민수의 아빠도 빌루 부인도 그렇고, 주민들의 일에 관심 많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오지라퍼 타냐 아줌마도 있다.   


민수의 아빠는 가출한 콘스탄티노스에게 수블라키를 파는 일을 돕게 하면서 이런 말도 듣는다.

“아저씨가 무슨 어른? 어른들은 가출 소년을 숨겨 주는 일 따윈 안 해요. 경찰에나 넘길까. 그러니까 아저씬 정신연령이 딱 나 정도인 거지. 날 이해하니까 숨겨 주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탁, 탁, 탁! 느리고 둔탁한 노크였다. 잠옷 차림의 바소 빌루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문가에 서서 콘스탄티노스를 껴안았고 녀석은 품 안에서 아기처럼 울었다. 멋쩍게 서 있던 레오니스의 얼굴 근육이 멋대로 실룩이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한 팔로 레오니스를 끌어당겼다. 그건 포옹이라기보다는 레오니스의 머리통이 아주머니의 팔에 끼여 버둥거리는 형상이었다. 한 팔에는 고무풍선처럼 물렁한 녀석이, 또 다른 팔에는 석고 조각상처럼 딱딱한 녀석이 매달려 있는 꼴은 볼만했다. 집 나간 탕자들이 이토록 환영받는 동네라니. 테오도루 24번지에 신이라도 세 들어 사는 건가.(200쪽)

   

열여섯살에 미혼부가 된 요나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도 안심이 된다. 뭔가 굳이 나서서 깨야 할 편견의 벽 같은 게 더 적다고 느껴진다.    

    

심사위원(윤성희)은 민수와 아버지의 갈등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민수에게 다양한 사연을 지닌 친구를 만들어 주는 점을 이 작품의 미덕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좋은 소설에는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나온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친구들이 바로 그 ‘거울’인 셈이다. 상처는 나 혼자 극복할 수 없다. 관계 속에서 극복해야 한다. 인물과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고 대화하고,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그러면서 말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러했다.”고 평했다.     

이 평대로 민수와 아버지의 갈등이 전면에 나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민수가 가출을 하긴 했지만, 둘 사이 상처를 드러내고 용서하는 과정도 흘러가듯 자연스럽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 뭘 말로 다해야 아나, 하는 것과 같은 느낌!     


캐릭터들의 성격과 문장도 한몫하는 것 같다. 사유보다 행동과 사건이 많고 대사들도 빠르게 왔다갔다 하고 생생하다. 단순함 속에 유머러스함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적극적이고 솔직하다.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고 말한다.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는다.      


3. 민수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민수는 순해 빠지고 성실한 아빠 밑에서 더 단단해지려고 한다. 세상을 잘 살아나가기 위한 반짝이는 지혜도 포착할 줄 안다.       


니코스 아저씨가 나에게 가르쳐준 삶의 지혜가 있다면 그건, 타이밍이었다. 니코스 수블라키는 그리스 국민 대다수가 불행하던 시절, 그 완벽한 타이밍이 낳은 대박 사업이었다. 시간을 쪼개 오로지 노동력으로만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그들에겐 맥도널드조차 사치가 되어 버렸다. 과거 이민자들의 뒷골목이었던 오모니아는 이제 만인의 뒷골목이 되었다. 그곳에는 콘스탄티노스 같은 가출 청소년뿐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불법체류자들과 집과 직장에서 쫓겨난 아테네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서성댄다. 바로 그들이 니코스 수블라키의 손님들이다.(119쪽)     


아빠는 의리의 사나이였으므로 누가 사장님 흉을 봐도 절대 거들지 않았다. 그냥 웃을 뿐이었다. 바로 저런 점이 니코스 아저씨가 아빠를 신뢰하는 이유였다.(121쪽)          


노점상 없는 길은 심심했다. 물감 세트에서 중요한 색깔만 쏙 빠져 버린 것 같다.(141쪽)   

  

이제 민수는 사랑도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계단을 날 듯이 뛰어 내려가 오렌지 나무를 향해 달렸다. 마르타가 내 발소리를 듣더니 뒤를 돌아본다. 그 애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거 알아, 마르타? 넌 웃을 때 참 예뻐. 하지만 난 그런 말은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지. 너희 여자애들이란 우리 남자애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니까 말이야. 난 입을 꾹 다물고 그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테다. 그래야 너와 내가 평등한 시민으로 공존…….

마르타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팔이 흔들거리며 내 살갗에 슬쩍 스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촐싹거리는 내 손이 어느새 마르타의 가늘고 따스한 손가락을 잡고 있다. 오렌지 향이 마르타와 내 사이를 싱그럽게 맴돌았다. 가슴속 호른이 깊고 낮은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연주를 시작했다.(203쪽)     


이런 민수가 귀엽다. 옆에 있다면 볼을 꼬집어주고 싶다. 열여섯이니 당연히 싫어하겠지만.

민수의 앞날에 행복만이 아니라, 행운도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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