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의 감기는 경계성암수술보다 무겁다
내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차가웠던 날. 병원 초음파실에서 일하며 나는 수많은 환자들의 몸속에 숨겨진 크고 작은 종양들을 매일같이 마주해 왔다.
모니터 속 흑백 화면에 비친 그 서늘한 그림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내 직업이지만, 막상 내 차트에 '경계성 난소 종양'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적혔을 때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난소와 자궁을 들어내는 대수술. '경계성'이라는 말이 주는 그 아슬아슬하고도 묵직한 공포감. 혹시나 잘못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떡하나, 오만 가지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무거운 마음으로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범한 드라마 속 남편이라면 이쯤에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내가 옆에 있잖아"라며 눈물 한 방울 정도는 흘려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다큐멘터리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는 블랙 코미디 시트콤 아니던가.
수술을 앞두고 온 집안에 긴장감이 감돌던 어느 날, 남편이 콜록거리며 퇴근을 했다.
그놈의 기침감기. 평소에도 본인 몸에 생채기 하나만 나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구는 남자이긴 했지만, 아내가 생사를 오가는 대수술을 앞둔 마당이니 이번만큼은 본인의 기침쯤은 조용히 삼키리라 아주아주 미세한 기대를 품었다. (물론 이 기대를 한 내 잘못이다.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기침을 쿨럭대던 남편이, 수술을 앞두고 상념에 빠져있던 나를 향해 아주 진지하고도 애처로운 목소리로 역사에 남을 명언을 던졌다.
"너도 배가 아파서 힘들겠지만, 나도 지금 감기 때문에 힘들어."
순간, 나는 내 고막을 의심했다.
지금 저 인간이, 전신마취를 하고 배를 갈라 장기를 떼어내는 '경계성 종양 수술'과 본인의 목구멍을 긁어대는 '기침감기'를 같은 저울에 올려놓은 건가?
아내의 암세포(가 될지도 모르는 종양)와 본인의 기침을 동일선상에 놓는 저 장엄한 평행이론!
수학계에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있고 물리학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있다면, 우리 집에는 '내 감기가 네 암세포보다 무겁다'는 남편의 절대적 이기주의 이론이 존재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타이밍에 "어떻게 나한테 그딴 소리를 해!"라며 손에 잡히는 모든것을 집어 던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분노 대신 헛바람 빠지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 남자에게는 남의 팔이 부러지는 것보다 내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게 우주에서 제일 아픈 일이지. 기대감을 암반수까지 낮췄는데, 이 남자는 오늘 굴착기를 타고 내핵까지 파고 들어가서 기침을 콜록대고 있구나.'
정말 기가 막히게도, 남편의 그 어이없는 망언 덕분에 수술을 앞두고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공포와 우울감이 일순간에 증발해 버렸다.
죽느냐 사느냐 심각하게 고뇌하던 나의 비장함이, 남편의 기침 소리 한 번에 한낱 콩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 남자들에게 감기란 에볼라 바이러스 급의 치명적인 질병이라더니, 우리 남편은 지금 내 수술만큼이나 본인의 기침과 장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구나.
세상 어떤 남자가 아내의 종양 수술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감기를 비비겠는가. 그 철딱서니 없는 순수함(?)과 상상을 초월하는 눈치 없음에, 나는 수술 전의 공포조차 잊어버렸다. 어쩌면 그는 수술을 앞두고 긴장한 아내의 어이를 가출시킴으로써, 공포심을 마취시키는 그만의 독창적인 프리메디케이션(마취 전 투약)을 시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무거운 마음 대신 헛웃음을 장착하고 수술실로 향했다. 그래, 살아서 돌아가자. 살아서 저 감기 걸린 '완벽한 타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리라!
나는 오늘도 수술 자국이 욱신거릴 때마다, 아내의 종양 앞에서 쿨럭이며 애처로운 표정을 짓던 남편의 그 진지한 얼굴을 떠올린다. 이토록 한결같이 본인밖에 모르는 완벽한 타인 덕분에, 나는 수술의 공포마저 헛웃음으로 극복한 불굴의 생존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