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수술실 앞의 먹방과 보호자 침대의 숙면

내 감동 돌려내, 이 완벽한 타인아

by 환불포기

"너도 배 아파서 힘들겠지만, 나도 감기 때문에 힘들어."
​본인의 기침과 아내의 종양 수술을 나란히 저울질하던 기막힌 명언을 남긴 채, 나는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갔다. '경계성 종양'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 앞에서 내 심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지만, 드라마 속 남편들처럼 수술실 밖에서 두 손을 모으고 초조하게 맴도는 남편의 모습을 아주 0.1초 정도는 상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마취에서 깼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 인생은 휴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지독한 시트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들은 수술 당일의 진실은 이러했다. 수술실 문이 굳게 닫히고 전광판에 내 이름이 '수술 중'으로 바뀌자마자, 이 '완벽한 타인'은 아주 씩씩하게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어디로? 바로 병원 구내식당으로. 마누라가 난소와 자궁을 떼어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든 말든, 가장의 위장은 정직하게 밥때를 알렸던 것이다. 밥알을 씹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술이 잘 되어야 할 텐데'였을까, 아니면 '여기식당 제법 괜찮네'였을까.


​하이라이트는 수술 당일 밤이었다. 온몸을 찢는 듯한 통증에 뒤척이며 겨우 눈을 떴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의 애틋한 실루엣이... 아니었다.
​보호자용 간이침대 위에서, 그는 그 좁고 불편한 공간을 무색하게 만드는 완벽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애들이 어릴 때 밤새 울어대도 꿋꿋하게 자던 그 놀라운 수면욕이, 아내의 대수술 당일이라고 해서 기적처럼 사라질 리 만무했다. 그래, 병간호도 결국 체력전이니까 푹 자두는 게 맞긴 한데... 한 번쯤은 자는 척이라도 하면서 내 상태를 살피는 시늉이라도 해줄 순 없었던 걸까?


​그런데 참 이상하지. 코를 골며 딥슬립에 빠진 남편의 둥근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만약 이 남자가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며 밥도 굶고 뜬눈으로 훌쩍거리고 있었다면, 오히려 '나 진짜 잘못되는 건가?' 하고 더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도 제때 밥을 챙겨 먹고, 보호자 침대에서도 꿀잠을 자는 저 무심함.

저 철저하고도 얄미운 '일상성'이 역설적으로 나에게 "거봐, 별일 아니잖아.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수술 후에도 여전히 자기 몸 편한 게 먼저고 공감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어쨌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준 사람. 간이침대에서 코를 골지언정 내 병실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사람.


​나는 어두운 병실 천장을 보며 다시 한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기대감을 지하까지 파고 내려가는 이 남자 덕분에, 나는 무거운 수술의 공포마저도 어이없는 웃음으로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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