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장인어른의 구원 등판과 사위의 철벽 방어

​병원 직원의 기적의 처방전, "제가 알아서 할게요"

by 환불포기

​내가 난소와 자궁 수술을 받고 병원 침대에 누워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집을 지키던 남편에게서 아이 둘이 쌍으로 감기에 걸렸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아내가 대수술을 받고 누워있으니 본인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텐데, 명색이 병원 직원인 이 남자의 대처법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약국에 들러 처방전도 필요 없는 시중 종합감기약만 덜렁 사다 먹인 것이다. 아내의 대수술 앞에서도 본인의 기침 감기를 나란히 저울질하던 남자이니, 애들 열나는 것쯤은 약국 시럽으로 가볍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결국 사단이 났다. 주말에 남편이 출근한 사이, 애들을 봐주러 온 친정아버지가 구원투수로 등판하셨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열이 펄펄 끓어 축 늘어져 있는 손주를 본 친정아버지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애들을 둘러업고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셨다. 어떻게든 수액이라도 한 대 맞혀서 기운을 차리게 할 작정이셨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의사 선생님은 "일단 약을 처방해 줄 테니 오늘 저녁은 지켜보고, 내일도 열이 안 떨어지면 그때 와서 수액을 맞자"며 돌려보내셨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사위에게 친정아버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신신당부하셨다.


"진 서방, 밤에 예솔이 열 오르는지 잘 보고, 열 안 떨어지면 내일 아침에 꼭 병원 다시 데리고 가서 수액 맞혀라."


​딸은 수술실에 누워있고 손주들은 앓아누웠으니, 애가 타는 장인어른으로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간곡한 당부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남편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발동하고 말았다.


그는 세상에서 '누가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똥고집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장인어른의 그 애틋한 당부 앞에, 남편은 아주 퉁명스러운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병실 침대에 누워 친정아버지에게 이 기막힌 전말을 전해 들은 나는, 순간 수술 부위가 터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아니, 약국 감기약 하나 덜렁 먹여놓고 애들을 그 지경으로 방치했던 사람이 도대체 뭘 알아서 한다는 건가? 장인어른이 애들 들쳐 업고 병원까지 뛰어갔다 오셨으면 "아버님,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 썼어야 했는데 감사합니다"가 먼저 나와야 하는 게 인간계의 기본 상식 아닌가.


그래, 저 남자는 장인어른 앞이라고 해서 없는 예의를 꾸며내는 위선자는 아니구나. 철저할 정도로 한결같은 저 싸가지(?)와 투명함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병실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남편의 사전에서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은 '내가 책임지고 이 사태를 완벽하게 수습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저 '내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더 이상 귀찮게 잔소리하지 마라'는 뜻의 무적의 철벽 방어 주문이었던 것이다.
​약국 시럽 하나로 애들 열을 잡겠다는 그 기적의 의학 지식과, 장인어른의 애타는 마음마저 단칼에 베어버리는 저 투명한 뻔뻔함! 신기하게도 그 사실을 직시한 순간, 분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생존 본능이 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 내가 하루라도 빨리 나아서 집에 가야겠다. 저 인간이 진짜로 알아서 하게 놔두었다가는 우리 집 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남편의 그 어이없는 철벽 방어는, 역설적이게도 병상에 누워있던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회복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장인어른의 복장을 터뜨린 사위의 그 얄미운 주둥이가, 아내에게는 링거액보다 더 확실한 기력 회복제로 작용한 셈이다.


​그래, 당신의 그 위대한 '알아서 할게요'가 우리 집에 어떤 대참사를 불러오기 전에, 내가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서 내 새끼들 내가 지켜야지 어쩌겠는가. 나는 그날 밤,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이를 꽉 깨물며 눈부신 회복의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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