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육아 무임승차자의 '방구석 오은영' 빙의

​전쟁 땐 숨어있더니 이제 와서 전술 평가를 하신다고요?

by 환불포기

​세상에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이라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독박 육아로 뼈를 갈아 넣은 워킹맘에게 던지는 남편의 육아 훈수'다.


​시계태엽을 첫째 아이가 태어났던 시절로 되돌려 본다. 남편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아주 견고하고 훌륭한 방패 하나를 장만했다.

바로 "나는 서툴러서" 라는 마법의 방패였다. 거기에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는 기가 막힌 명분까지 더해지니,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육아라는 열차에서 하차해 무임승차자가 되었다.


​산후조리원 동기들은 "산모는 관절을 보호해야 한다"며 남편들이 퇴근 후 아기 목욕을 전담한다고 자랑했지만, 우리 집 남편은 본인의 관절만 소중히 보호하셨다. 결국 나는 덜덜 떨리는 손목에 두꺼운 아대를 칭칭 감고 홀로 아기를 물에 적시고 씻겨냈다. 새벽의 밤중 수유, 이유식만들기 거기다 집안일까지. 이 모든 것은 '육아휴직 중인, 덜 서툰' 나의 온전한 몫이었다.


​진짜 지옥문은 복직과 동시에 열렸다.
아침이면 내 병원 출근 준비와 두 아이의 등원 준비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했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가 스스로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주체적 식사 교육?' 그건 시간 많고 우아한 집에서나 가능한 사치였다.
​나에게 아침 식사란, 1분 1초를 다투는 군사 작전과도 같았다.
"아 해! 씹어! 삼켜!"를 외치며 숟가락을 비행기처럼 날려 아이들 입에 쑤셔 넣기 바빴다.


그렇게 내 혼이 반쯤 빠져나가는 동안, 남편은 옷장 앞에서 아주 신중하고도 엄숙한 표정으로 오늘 입을 와이셔츠를 고르고 있었다. 아니, 전부 다 똑같은 하얀색 와이셔츠인데 도대체 뭘 저렇게 루브르 박물관에서 예술 작품 감상하듯 고른단 말인가?
​그의 웅장한 아침 루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1초가 아쉬워 세수만 겨우 하고 맨얼굴로 뛰쳐나가는 판국에, 남편은 화장대 앞에서 스킨과 로션을 차곡차곡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심지어 대충 바르는 것도 아니고, 피부 깊숙이 쏙쏙 스며들라는 듯 손바닥으로 '찹찹찹' 정성스럽게 두드려 흡수까지 시키는 엄청난 여유를 부렸다.
​그 아주 우아하고 평화로운 '나 홀로 뷰티 관리' 출근 준비를 마친 뒤 나보고 " 늦었어! 빨리해" 재촉할때면 으~~~

그 촉촉해진 뺨을 스킨 대신 내 손에 들린 밥주걱으로 똑같이 '찹찹찹' 두드려 모공 깊숙이 흡수시켜 주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꾹꾹 눌러 참아야 했다.


​퇴근 후의 밤은 더 처절했다.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차리고, 그 밥을 또 전투적으로 떠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밀린 집안일까지 끝내야 자정 무렵에나 내 하루가 끝이 났다.
​그 시절 나의 좌우명은 이것이었다.
'앉지 마라. 앉는 순간 눕고 싶어지고, 눕는 순간 잠든다. 미션을 다 클리어하기 전까지 내게 엉덩이를 붙일 권리는 없다!'
​그렇게 내가 핏발 선 눈으로 집안을 종종거리며 뛰어다닐 때, 남편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철저히 침묵을 지켰다. 내가 애들을 따라다니며 밥을 떠먹이든, 목욕탕에서 물장구를 치든 그는 결코 육아의 방식에 입을 대지 않았다. 왜냐고? 그때 입을 잘못 열었다가는, "그럼 오빠가 한번 먹여봐!" 하고 숟가락이 본인에게 날아올 것을 짐작하는 놀라운 생존 본능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훌쩍 커서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이 된 지금.
기저귀 갈고, 씻기고, 밥 떠먹이는 그 지옥의 '물리적 육아 노동'이 얼추 끝나가자 우리 집 소파 위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0년 가까이 묵언수행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육아 일타강사, 혹은 오은영 박사님에 완벽하게 빙의해서 말이다.
​"당신이 어릴 때부터 자꾸 다 떠먹여 버릇하니까 애들이 스스로 할 줄을 모르잖아!"
"다 해줘 버릇하니까 애들이 치울 줄도 모르고 문제 해결 능력이 안 키워지는 거야. 당신이 애들을 잘못 키우고 있어!"
​순간, 10년간 참고 억눌러왔던 홧병의 마그마가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아니, 이보세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통에는 행여나 본인한테 불똥 튈까 봐 참호 속에 숨어서 숨만 쉬고 있던 양반이, 이제 와서 피투성이가 된 참전 용사한테 전술이 틀렸네 마네 평가를 하신다고요?!'
​그 옛날, 내가 퇴근 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입에 밥을 쑤셔 넣으며 애들을 따라다닐 때 "여보, 애들 주체성을 위해 내가 기다리며 먹여볼게"라고 단 한 번이라도 나섰다면 내가 이토록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본인 손에 밥풀 하나,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무임승차로 편하게 여기까지 와놓고선, 이제 와서 "너의 운전 방식이 틀렸다"며 역정을 내는 저 기가 막힌 뻔뻔함! 나는 기가 차서 대꾸할 가치조차 상실해버렸다.


​그래, 입으로 하는 육아는 나도 하버드 석학처럼 할 수 있다. 실전 육아의 쓴맛은 1g도 안 본 주제에, 뒤늦게 이론만 빠삭해져서 입만 동동 뜬 우리 집 방구석 오은영 박사님. 나는 오늘도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이 한 편의 훌륭한 부조리극을 시트콤 대본에 아주 정성스럽게 기록해 둔다. 두고 보자, 내 이 억울함을 활자로 만천하에 다 폭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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