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처럼 크지 마라, 이것이 나의 참교육이다
결혼 생활이 10년을 훌쩍 넘어가며, 나는 남편이라는 존재의 정의를 아주 심플하고 생물학적으로 재정립했다.
'내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귀중한 염색체의 절반을 제공해 준 사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역할이나 로맨스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감이 '0'으로 수렴하니, 내 마음도 한결 평화로워졌다.
문제는 이 '염색체 제공자'가 자꾸만 물리적으로 내 심기를 거스른다는 것이다. 기대하는 바는 없지만, 그냥 내 시야와 후각에서 좀 안 거슬렸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그의 주 서식지는 거실 소파다. 퇴근 후 씻지도 않은 채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뒹구는 통에, 우리 집 최고급 소파에서는 늘 정체를 알 수 없는 퀴퀴한 '아저씨 냄새'가 배어난다. 시각적, 후각적 테러에 이어 청각적 테러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본인이 조금만 피곤하면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에게 "시끄럽다!"며 소리를 지르고, 씻지도 않고 누워만 있던 본인이 갑자기 집이 지저분하다고 느끼면 "정리 좀 해라!"라며 아이들에게 짜증을 쏟아낸다.
참다못한 내가 어느 날 등판했다.
"아니, 본인도 씻지도 않고 맨날 소파에 누워만 있으면서! 애들한테 치우는 본을 보여주지도 못할망정, 어른인 오빠도 안 하는 걸 왜 애들한테 못한다고 화를 내?!"
논리적이고 팩트 폭력적인 나의 지적에, 남편은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드디어 이 남자가 자신의 뻔뻔한 내로남불을 부끄러워하는구나 싶던 찰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예상 경로를 완벽하게 이탈했다.
"…나처럼 크면 안 되니까 그렇지."
순간, 거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뜬금없이 완벽하고 철저한 자아성찰이지? 본인이 엉망진창이라는 걸 너무나 뼈저리게 알고 있어서, 내 아이들만큼은 이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저 눈물겨운 부성애(?)라니!
아, 그는 스스로를 '반면교사(反面敎師: 나쁜 면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의 완벽한 표본으로 희생하여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참된 교육자였던 것이다! 본인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온몸으로 낱낱이 시연하며 "너희는 절대 나라는 인간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외치는 저 아방가르드한 훈육 방식에 나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당신이 자신의 한계를 그토록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니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어 아이들을 일깨우려는 저 숭고한 살신성인(?)의 정신. 염색체 제공부터 완벽한 '인생 오답 노트' 제공까지 책임지는 아빠로서의 헌신에, 오늘도 나는 분노 대신 배꼽을 잡는다.
이 지독한 내로남불마저 기상천외한 유머로 승화시키는 우리 집의 거실은, 오늘도 평화로운 시트콤 세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