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재미있다는 건 인정
뒷담화 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와의 대화 중 불쑥 튀어나오는 뒷담화들에 언제든 휘말릴 수 있으니 말이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면 몇시간도 모자란 것이 뒷담화다.
한번의 대화에 수많은 감정이 응축되어 있기에 당신과 나 사이의 강력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즐거움과 분노, 슬픔과 헛헛함, 소소한 위로와 공감들까지... 메마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종합선물세트다.
나 역시 지난주만 하더라도 회사 내 수많은 뒷담화를 겪었다.
우리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상사를 흉보거나 후배를 깠다.
세상 이것보다 더 즐거운 대화가 있을까?
특히 가끔씩은 이런 대화 속에서 명품 성대모사가 탄생하기도 하는데, 어떤 성대모사는 회사 명예의전당에 헌액하고 싶을 정도의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제3자의 잘못을 적당히 과대포장하고 이것을 소재로 삼아 모두가 각자의 긴장감을 해소하는 시간.
나 역시 많이 웃었고 거들어 가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즐거운 순간은 그때 뿐이다. 마치 담배와 같다. 예외가 없다.
대화가 끝난 후 밀려드는 뒷 맛을 가볍게 삼켜내기 참 어렵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긴 시간 나누었던 대화의 처음과 끝, 원인과 결과가 '아무 의미없음'으로 수렴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 정신과 영혼이 서서히 갉아먹히고 있음을 느낀다.
시작은 즐거웠으나 그 마지막이 씁쓸한 것은 한번 진지하게 고찰해 봐야한다.
인생을 살면서 무엇이든 그 끝이 좋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에 올라오는 비릿한 쓴 맛이 그토록 싫어졌기에, 언제부턴가 나는 뒷담화를 썩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상대방과 유대감을 쌓기 위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좀 더 성숙해졌다거나, 어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관점이 좀 달라졌다고 하자.
별 소득 없는 시간낭비로만 느껴진다.
타인은 너에게 관심이 없으니 그냥 너 원하는 대로 살으라는 격언이 있다.
틀린 말이다.
오랜시간 직장을 다녀보면 안다. 사람들이 얼마나 남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를 말이다.
뒷담화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내가 남을 향한 관심을 끊고나서부터이다.
좀 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 인생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내가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미래를 그려가야 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재밌는 것은, 남에게 관심을 끊고 내 인생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하루하루가 더 바빠졌다.
해야할 것, 하고싶은 것이 투성이다.
그런데 남이 어떻게 사는지까지 신경 쓸 여력이 도무지 생길 수 없다.
스스로를 좋게 평가해서 '타인에게 둥글어졌다'고 나름 포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잘 안다. 남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만 이런 상태가 꽤나 만족스럽다.
가끔씩은 과한 뒷담화에 동참하는 일이 종종 생기지만 괜찮다.
스쳐가는 가랑비에 견딜 수 있는 마음 속 우비가 준비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날엔 불현듯 화가 날때도 있다.
모이기만 하면 너무나 자연스레 뒷담화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있다.
스릴있는 뒷담화보다는 재미없는 침묵을 더 선호하는 사람.
남한테 별 관심없는 사람도 드물지만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불현듯 주어진 나의 인생, 언젠가 멈추게될 내 인생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충실히 재밌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