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MZ과장의 바람직한 회사생활
30대 중반을 관통하면서 어느새 공기업 과장이라는 역할에 익숙해졌다.
베테랑이라 하기엔 아직 어리지만서도, 이 바닥 생태계는 대충 아는 놈이 되었다.
일도 좀 할 줄 알고, 책임도 질 줄 안다는 평도 간간히 듣는다.
가감 없이 말해서, 난 회사에서 제법 성공적으로 포지셔닝을 구축했다.
하지만 나는 연차가 쌓이고 월급이 오를수록 회사와 더 멀어지려는 노력 중이다.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뭐랄까... 회사를 향한 내 욕망이 점점 더 커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려나?
버텨온 세월만큼, 회사 안에서 나의 가치를 자꾸 증명하고 보상받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후배들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는 척을 한다.
그런 내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올때면 정말 꼴보기 싫다.
진정한 멋이란 진실한 행동에서부터 우러나오고, 또 그런 멋이 존경과 위엄을 가져오는 것인데,
나를 비롯한 많은 직장인들은 정 반대의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승진을 하면 할수록 회사와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기로 했다.
먼 간격으로부터 기인하는 적당한 불편함을 끝까지 감수한 채 살아가고자 마음먹었다.
회사를 향한, 사람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도록 만드는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나름 꾸준히 실천한 덕분인지 회사에서의 일과 관계 모두 고양이처럼 깔끔 떨며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우리집에서 가장 편안한 모습의 나는 갯벌을 헤짚고 살아가는 망둥어와 같다.
회사가 너무 편해지면 대충 두가지 모습으로 귀결된다.
지저분해지거나, 상스러워지거나.
시각적 요소만을 함축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인 지저분함, 언행의 상스러움, 충동적인 의사결정 등을 통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무모함은 그가 속한 조직과 회사의 문화까지도 악하게 물들여간다.
나는 편하지만 모두가 불편해진다.
인간의 욕구와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케찹을 짜는 행위와 같다.
처음엔 낯부끄러워 쉽사리 표출되지 못하지만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 통제불가능하게 폭발적으로 뿜게된다.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더욱 그렇다.
직장생활이 편해질수록 그 임계점이 낮아지는 것을 체감한다.
오랜기간 재직한 회사 어른들을 관찰한 결과, 회사를 편하게 생각할수록 과도한 주인의식이 발현된다.
내가 곧 이 구역의 주인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숨소리마저 통제하고 싶어진다.
특히 그것은 분노의 감정과 손쉽게 결합된다.
본인 영역과 권한 너머 현안에 대해서도 과하게 집착하고 참견한다.
그러다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격한 화를 내뿜는다.
재밌는 현상이다. 애초부터 자신의 몫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라앉지 못하는 분노는 점심시간 뒷담화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회사 구성원 간 신뢰를 해친다.
변질된 주인의식은 개인을 망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두를 힘들게 한다.
우리 모두 회사로부터 한발자국 더 멀어져야 한다.
나 역시 태생적으로 욕심이 있는 놈이기 때문에 이 현상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든 망가질 수 있는 자질이 있다.
더욱 스스로를 경계하고, 주위를 가볍게 환기시키고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지속적으로 신경 쓰고 공을 들이지 않으면 나 역시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어쩌면 회사 바깥에서 모범답안을 찾게되지 않을까.
회사에서 누적되는 나의 욕심과 욕구를 바깥으로 해소시키는 수단을 찾는 것 말이다.
이것을 내가 요즘들어 자체 실험하고 있다.
퇴근 후 헬스와 가끔씩 하는 축구, 주말에는 하고싶어 참아왔던 게임, 틈틈이 독서. 그리고 요즘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피곤하면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본다. 그럼에도 내 삶의 전반이 더 충만하고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충실하다는 것은 바쁘다는 것과 다른 개념이다.
내 삶 자체를 향유하고 있달까. 내 안의 고요한 외침까지 귀기울여 듣는 것.
회사가 결코 내 전부가 아닐진대, 그간 나는 왜 그리도 회사 속 나에게 집착을 하였던가.
크게 별볼일 없지만 하루하루 만족스럽게 살려고 한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시선과 존경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 스스로 느끼는 선물같은 만족감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먼 훗날 글 잘쓰는 작가로도 성장하고 싶다.
물론 그때에도 분명 회사생활은 잘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