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원하게 욕 먹었습니다!
와이프와 나는 동갑내기 친구다.
친구인 덕분에 서로를 향해 선명하고 투명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들도 같으려나?
내가 결혼을 한 번밖에 안해서 잘 모르겠다. 간혹 궁금하긴 하다.
양보할 수 없는 쟁점이 생기면 서로 치열하게 다툰다.
그 과정 속에서 가끔씩 내 정체성과 자아에 대한 괴리감을 느낀다.
회사에서의 나는 꽤나 잘 참고 버티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비합리적이더라도, 조금은 억울하더라도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만 않는다면 툭툭 넘긴다.
'원한다면 네 뜻대로 하십시오.'라는 생각으로 살다보니 갈등도 크게 없다.
후배들도 자유롭게 방임하는 편이다.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자면, 내가 마음 속에 쳐놓은 울타리가 비교적 넓은 편이랄까?
드넓은 울타리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마음것 뛰놀아라 주의다.
하지만 그 울타리만큼은 반드시 굉장히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하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짜치는 것에 시비걸지 않고, 내 일은 떠넘기지 않고 깔끔하게 해결하는데 집중한다.
그래야 선후배 모두 나에게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아 근데 와이프에게는 정말 약하다.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집에만 오면 아예 없어지는걸까?
작은 자극에도 반응할 때가 많다.
그러니 자주 싸운다. 물론 아무일 없듯 화해하지만 다툼은 다툼인거다.
회사에서의 내 모습, 집에서의 내 모습이 너무 다르다.
그 괴리감을 온몸으로 느낄때 스스로 초라해진다.
옛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였는데 한치의 틀림이 없는 말이다.
나랏일보다 집안일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고난이도 4점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3점짜리 문제야 못 풀겠는가?
특히 내가 와이프한테 속절없이 무너지는 현안이 있다.
바로 '가사'
나는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데 매주 실천하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유야 많다. 피곤하기도 하고, 아직 청소안해도 깨끗해 보이기도 하고...
하여튼 슬금슬금 건너뛰다 아다리가 맞는 날엔 박살나는거다.
난 아무말도 못한다. 그냥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안하던 애교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자니...
예고없던 폭우에 그저 내 몸을 적실 뿐이다.
자연재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도 잘하고, 집에서도 깔끔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정말 부럽고 대단하다.
슈퍼맘, 슈퍼대디라 불리는 사람들을 점점 더 존경하게 된다.
나는 평생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
좀 게으르게 태어난지라,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는 신경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 개선의 노력은 하겠지만,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 부분에서만큼 나는 글러먹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니 와이프에게 깨져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어쩌겠는가. 내가 해야지.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도 이 패턴은 반복될 것이다.
집에서만큼은 와이프가 훨씬 꼼꼼하고, 나는 굉장히 러프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기준이 너무 달라 앞으로도 나는 털릴 것이다.
머지않아 떠나게될 국내여행으로 주제를 환기시키는 것만이 갈등의 해소방안이다.
회사일과 집안일을 모두 만족하게 해내는 어른이 정말 존재하고 계시다면,
내가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