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사회생활

회사후소( 繪事後素) 2. 미케네, 청동기, 신화적 기억

by 생강도넛

아르고 원정대는 청동기 시대, 미케네 사람들의 해상 무역에 관한 기억이었습니다. 이아손이 콜키스의 황금 양털을 찾으러 가는 여정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가 마주했던 생존의 현실과 맞닿아 있었지요. 기원전 13세기, 미케네의 문명이 정점에 이르렀던 이 시기는 청동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던 무렵이기도 했습니다.


금속이 권력을 주다 = 청동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 합금입니다. 구리와 주석은 형성되는 지질학적 화학적 환경이 다른 탓에, 자연계에서 두 물질이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해요. 그래서 미케네 사람들은 지중해 남쪽 키프로스에서 구리를, 멀리 영국이나 스페인 일대에서 주석을, 복잡한 무역 유통망을 통해 구해야 했습니다다. 콜키스(지금의 흑해, 조지아 공화국) 역시 구리와 금이 풍부했습니다. 고대인들이 양털을 사용해서 강에서 금을 채취하는 방법도 썼다고 하니, 이쯤이면 바다를 뚫고 콜키스로 가서 황금 양털을 가져온다는 신화의 설정은 단지 맹랑한 것만이 아니라 현실적 비유였네요.


미케네는 에게해, 이집트, 히타이트 등 동방의 세련되고 거대한 문명과 교류하며 문자(선형문자 B)를 사용하고 도시 단위, 궁전 중심의 중앙집권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문명화 된 곳이었지요. 서사 구조가 있는 종교와 청동 기술이 미케네의 일상이었어요. 반면, 주석이 묻혀 있던 유럽의 부족사회는 미케네 사람들에게 낯설고 야만적으로 보였을 것 같군요. 바르바로스(Barbaros, 야만)라는 단어는 기원전 8-7세기 폴리스 시대에 생기지만, 미케네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언어와 질서를 모르는 자들을 야만으로 인식했습니다. 언어와 종교가 다르고, 사고 구조도 낯설기 짝이 없으며, 미케네의 무역 질서와 문명을 모르는 야만스러운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무역하기 위해서는 큰 힘과 자본과 군사력이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청동이란 게 구리와 주석을 한 자리에 모아놓기만 한다고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미케네 시대에 청동 제작은 신의 영역에 가까운 고난도 기술이었습니다. 구리는 약 1085도, 주석은 232도에 녹는데, 나무를 태우는 온도가 600-800도니까, 1000도 이상의 불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면 흙벽을 쌓아 열을 가두고, 가죽 송풍기로 산소를 쏟아붓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 필요했다. 또한, 두 금속이 섞여 청동이 되면 녹는점이 900-1000도 사이로 낮아지는데, 이 미묘한 비율의 미학을 조절해 단단한 무기를 연마하는 과정은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상업적, 기술적 필요를 전부 해결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조직력, 즉 정치적 힘이 필수였습니다. 결국 청동은 개인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국가적 프로젝트였습니다. 청동을 통제하는 사람이 미케네의 정치 지배자였지요. 아가멤논과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들은 그 권력의 상징인 청동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볐습니다.



신화로 승화된 역사

고대의 어른들은 세련되고도 짓궂어 보입니다. 그들은 삶과 죽음, 우주와 자연, 문명과 역사, 소문과 통찰을 후손들에게 순순하게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상상의 존재와 식물과 바람, 강물에 녹여 은근하게 전했지요. 아르고호 역시 날것의 상상력이 아니었습니다. 고고학자들과 고전학자들은 아르고 원정이 청동기 후기, 그리스인들이 흑해와 해상무역을 하던 실제 경험이 세대를 거치면 재구성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기원전 13세기의 항해. 그렇게나 오래된 과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매 순간 맞닥뜨리는 시대의 요구와 공동체의 통념과 이슈에 따라 재구성되고 입체화되어, 마침내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영웅들의 이야기로 인류에게 안착했습니다. 청동기 후기, 그리스인이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해상 활동과 ‘동방의 황금 땅’에 대한 기억이 세대를 거쳐 신화로 승화된 결과였습니다. 미케네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으나, 아르고호는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와 헤시오도스(기원전7세기)와 핀다로스(기원전 5세기)를 거쳐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학자였던 아폴로니우스 로디오스에 의해 인류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았습니다.


아르고 원정(Argonautica, 아르고나우티카)가 기원전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지식인이 기록하기까지 천년이 걸렸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모험의 기억은 주로 구전 전통을 통해 계승되었습니다. 천년이 지나는 동안, 골짜기마다 동네마다 이형태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아손,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등 아르고호의 영웅들의 기원은 각기 다른 도시를 기반했고 시간차도 매우 컸습니다. 헤라클레스와 이아손은 청동기 그리스에 등장했지만,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폴리스 시대에 등장했어요. 이런 영웅들이 아르고 원정대에서 하나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같다고나 할까요? 명심합시다. 아르고 원정대는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기억하는 방식이고, 신화 그 자체인 것을요.



(이야기가 만들어진)기원전 13세기 그리스 vs (아르곤 원정대가 작성된)기원전 3세기 지중해

1000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사람들에게 자연은 호기심과 탐구보다는 두려움과 기도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연은 사람의 생계(농업, 목축업 등)와의 관계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습니다. 특히 고대의 바다 사람들에게는 말그대로 절대적이었습니다. 선배들로부터 해류의 패턴을 익히고, 경험을 통해 계절, 절기, 날씨, 낮과 밤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감각적으로 익혀도 바다는 감당하기 버거웠습니다.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면 육지 사람은 어디론가 몸을 숨긴채 앞으로의 생존(식량, 돈 등)을 걱정해야 했지만, 바다 사람들의 경우, 지금 당장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되었습니다.


헬레니즘 이전에도 생각하기의 명수들이 지중해에 제법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기원전 5세기)와 플라톤(기원전5-4세기)이 철학하는 자로, 아리스텔레스(기원전 5세기)가 과학적 사고의 대선배로 칭송을 받는 것은 후대의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살아서 제 주변에 크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살던 아리스타르코스와 에라토스테네스와 같은 학자들도 지구의 크기를 연구하고, 태양 중심설을 토론할 정도였지만, 단지 지식인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 몇몇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신화적 해석과 감정으로 만물을 대했습니다. 번개는 제우스의 분노, 폭풍은 포세이돈의 분노, 풍요는 데메테르의 기쁨이었지요. 계절의 변화는 페르세포네가 저승과 지상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바람에 생겼고, 지진은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땅을 쳐서 생기는 현상이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신화는 자연을 이해하는 언어였습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사람들이 자연의 이치를 이지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대자연과 이를 관장하는 신들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아르고 원정대가 출항했습니다. 신들의 질서에 순응하고 자연을 달래면서 콜키스로 나아갔습니다. 신들과 자연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잡아줄 음악하는 영웅, 오르페우스를 선두에 세우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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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worldhistory.org/image/16219/map-of-the-quest-of-jason-and-the-argonauts/?utm_source=chatgpt.com, 시메온 네체프(Simeon Netchev) 작품



(그림 중간에 보이는 1번에서 12번까지가 아르고 언정대가 이올코스에서 출발해 콜키스까지 여정이다. 지도에 친절하고 상세하게 나와 있는 대로, 콜키스로 가는 길이 모험과 고난이 한가득이었지만, 돌아오는 여정에 비할 바가 못된다.)







윗 그림: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 1527~1598),

아르고호 원정대 지도(Map of the Voyage of the Argona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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