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후소(繪事後素 ) 1. 오르페우스가 아르고 호에 승선하다
기원전 13세기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올코스의 왕이 염려하던 일이 마침내 현실이 되나 싶네요.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은 젊은이가 이올코스에 나타나 곧장 궁전으로 오더니, 자신이 선왕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이라고 밝혔거든요. 한쪽 신발만 신고 나타난 이아손을 본 왕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이아손의 귀환과 펠리아스의 운명을 고지하는 신탁이 이미 있었던 터였가 때문입니다.
"한쪽 신발만 신은 자가 나타나면, 그가 펠리아스를 왕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죽일 것이다."
그 불길한 신탁이 이제 눈앞에서 실현될 판이었습니다. 펠리아스는 형 아이손의 왕위를 물려받으며, 형의 아들 이아손이 어른이 되면, 왕위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때가 되자, 그는 왕좌를 내주는 것도, 신탁대로 이아손의 손에 죽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펠리아스는 다른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콜키스에 있는 황금 양털을 가져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
이아손은 삼촌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케이론의 제자로 자라 무술과 의술에 아무리 능통하다 한들, 이제 막 이올코스로 돌아온 이아손에게는 왕이 되기에 필요한 정치적 기반이 없었습니다. 마음이야 급하지만, 콜키스가 어떤 곳인가요? 그곳은 이올코스와 그리스 사람들에게 멀고도 먼 미지의 세계였으며, 신들의 허락 없이는 감히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땅이었습니다.
일단 배가 필요했습니다. 최고의 선박 기술자 아르고스가 가진 기술과 능력을 한껏 부려 멋진 배를 만들었습니다. 아르고스의 기술도 대단했지만, 여신 아테나가 그에게 특별한 지혜를 더했다고 해요. 그 덕택에 여태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긴 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배를 만든 아르고스의 기술이 얼마나 신통했던지, 후대의 사람들은 원정대의 이름을 주인공 이아손이 아니라, 아르고스의 이름을 따서 아르고 원정대라고 불렀습니다.
콜키스만 미지의 땅이 아니라, 그리로 가는 길도 막막했기 때문에 이아손은 가능한 많은 재주꾼들과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아르고스가 건조하는 동안 이아손은 모험에 함께 할 자들을 모았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 카스토르, 폴룩스, 테세우스, 네스토르, 아탈란테, 오디세우스 등 쉰 명가량의 영웅들이 배에 오르겠다고 모였습니다.
지금이야 그리스의 이올코스(현재 지명은 볼로스 Volos)에서 조지아 북쪽 해안(예를 들어 바투미 Vatumi)까지 크루즈 속도로 쉬지 않고 가면, 35시간, 1박 2일이면 충분합니다. 에게해- 다르다넬스해협(터키, 트로이목마 사건이 있던 지역)-마르마라 해- 보스포루스해협(터키, 이스탄불)-흑해- 조지아의 바투미로 통하는 길은 1200~ 1400킬로미터 정도의 길이입니다. 현대의 조선 기술은 에게해의 강한 여름바람과 불규칙한 겨울바람, 흑해의 겨울 폭풍에 거뜬하고 해협의 복잡한 해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지요. 그러나 고대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로는 몹시도 험난한 여정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르고스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기원전 13세기의 조선술과 항해술에 무슨 신통한 것이 있었겠어요?
기술적으로 봤을 때, 콜키스로의 항해는 현대에 우주선을 타고 목성으로 가는 일과 견줄만했습니다. 나침반도 없던 시절, 그들은 나무배를 타고 해와 달과 별과 바람의 냄새와 하늘의 색깔과 신들의 눈치를 살피며 콜키스로 가야 했습니다.
당시의 감각과 통념으로 보자면, 그리스의 지평선, 에게해와 이오니아 해의 수평선 너머에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콜키스로 항해하는 것은 세계의 경계를 넘어 혼돈으로 간다는 말이었습니다. 펠리아스의 제안은 이아손을 죽이겠다는 뜻이었고요. 콜키스는 사람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모험이라는 말을 가볍게 쓸 만한 일이 아니었지요.
콜키스의 입장에서는 바다 건너 촌뜨기들이 나라의 보물을 강탈하러 오는 일이었습니다. 싸움 잘하는 이방인 쉰 명이 불쑥 나타나서, 나라의 보물인 황금 양털을 달라는 것을 콜키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외교사절단이라 볼 수도 없고 전쟁을 일으키러 온 것도 아닌 모호한 도발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르고 원정대는 말이 좋아 모험이지, 사실은 죽음과 혼돈과 피를 전제로 하는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거친 일에 무예, 전투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들고 배에 올랐습니다.
아르고나우티카(역: 아르고호, 아르고 원정대)를 읽어보면, 오르페우스가 원정대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뒤로 헤라클레스(힘), 아이독스와 엘레아그로스(용기와 용맹), 이다스(무예), 린케우스(천리안), 티피스(항해술) 등이 차례로 원정대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아래는 아르고나우티카(Argonautica, 아르고 원정대)에서 오르페우스가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제1권 23-24행(Loeb Classical Library판)
헬라어 원문 (Apollonius Rhodius, Argonautica 1.23–31)
πρῶτον μὲν Μουσάων φίλον ἄνδρα, Θρῇκα Ὀρφέα,
Κάλλιόπης υἱόν, ἣν Ἀπόλλων ποτε φῆγε
παρθενίην· τῷ δ᾽ ἔμπεδος ἔνθετο φωνὴ
κιθαρισμοῖό τε τέχνη, καὶ ἀοιδῆς.
τοῦ γὰρ καὶ πέτραι καὶ δένδρεα πάντ᾽ ἐπὶ γαίῃ
ἑπόμενα ῥεῖθρα τε ποταμῶν· ἦν καὶ θῆρες ἀοιδῇ
ἥμεροι· ὣς καὶ νῦν κλέος ἔμπεδον ἀνθρώποισιν.
First let us name Orpheus, the famous Thracian,
son of Calliope, whom once Apollo taught
to play upon the lyre and to sing verses.
For of him it is said that even the rocks and the trees
followed his music, and the rivers stayed their flow;
and wild beasts became gentle through his song,
and so his fame abides among men.
먼저, 트라키아 사람 오르페우스를 부르자.
그는 칼리오페의 아들이며, 한때 아폴론이 그에게
리라 연주와 노래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로 말미암아 돌과 나무들이 움직여 따랐고,
강물도 흐름을 멈추었으며,
짐승들마저 그의 노래에 길들여졌다고 한다.
이처럼 그의 명성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 전해진다.>*
아르고 원정대를 쓴 시인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기원전 3세기)는 오르페우스의 무예와 용맹보다, 그의 혈통과 음악을 더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음악의 신이고, 스승은 아폴론이며, 그가 연주하면 자연 만물조차 순종했다고 노래하지요. 원정의 첫 번째 참자가가 탁월한 음악가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아르고호에 오르려면 리라를 잘 켜는 것보다, 동네 건달 몇 명을 쓰러뜨린 경력이 더 어울리지 않나요? 모험에는 노래보다 주먹이, 리라보다 눈치가 필요합니다.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파도 소리만 들어도 바람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절실하죠.
상황이 이러하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요. 오르페우스와 그의 음악이 무엇이길래 시인은 힘센 영웅들을 뒤로하고 오르페우스를 첫 번째로 섭외했을까요? 음악의 거장이 왜 거친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을까요? 오르페우스와 그의 음악은 아르고 원정대에 무엇이었을까요?
답을 찾으려면 음악가의 선율에만 집중해서 안 됩니다. 일단 이야기가 태어난 땅, 기원전 13세기 미케네 문명의 땅 그리스로 돌아가야 해요. 그 시대의 바다와 땅과 신들, 인간 현실을 들여다봐야 비로소 오르페우스의 리라가 왜 모험의 한복판에서 울려 퍼졌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 어떻게 해서 미케네 문명이 원정대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지 다뤄 봅시다.
*chat gpt에서 검색, 인용.
커버 이미지: 1520년, Dosso Dossi 작품,
출처-https://www.ksam.co.kr/p_base.php?action=story_base_view&s_category=_2_&no=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