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구절초 바람
가을바람이 물들 무렵
밤하늘의 은하수가 땅 위로 내려앉은 듯, 순백의 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내 마음의 가을을 수놓는다.
‘구절초(九節草)’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이는 풀, 혹은 음력 9월 9일에 꺾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한다. 그 꽃말도 참 곱다 — ‘순수’, ‘어머니의 사랑’, 그래서인지 구절초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오래된 고향 내음과 따뜻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구절초 축제가 열리기 하루 전, 나는 큰누님, 둘째 누님과 함께 꽃구경을 나섰다.
축제의 북적임이 시작되기 전이라 입장료도 없고, 들판은 고요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바람결에 꽃향기가 번지고, 넓은 시야에 펼쳐진 흰 물결을 마음껏 눈에 꾸욱 담을 수 있었다.
소나무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니, 눈꽃송이 같은 구절초가 들판을 덮었다. 그 뒤로 코스모스와 노랑, 분홍, 붉은빛의 백일홍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그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 귀밑머리를 스치며 코끝에 닿을 때, 문득 떠오른 건 우리 누님들의 수수한 향기였다 — 은은하고, 따뜻하며, 오래도록 기억되는 향기.
구절초는 어디서나 잘 자라지만,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 질긴 생명력은 어쩐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소박하지만 정감 있고, 굴곡 많은 세월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온 가족의 인연처럼. 가을 하늘 아래 하얗게 핀 구절초는 그렇게, 우리의 삶을 닮은 꽃으로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