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38. 이젠 죽을랑가 보다.

by 큰나무

이젠 죽을랑가 보다

추석 명절을 무사히 보내고, 마당 안의 단감이 노랗게 익어가기만을 기다리던 중,

“올해는 저 단감으로 곶감을 깎아야겠다.”


아버지는 감나무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상강이 23일이라니, 그때쯤이면 감을 따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단감은 아직도 진초록빛을 벗지 못하고 잎 뒤에 숨어 있었다.


여름이 워낙 더워서인지, 추석이 지나도 더위는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아버지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인제 죽을랑가 보다.”

불쑥 내뱉으신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유를 묻자,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고 하셨다.

‘설마 큰 병이 아니길…’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버지를 따라가 보니, 정말로 소변 속에 선홍색 핏줄기가 길게 섞여 있었다. 괜찮을 거라 위로했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증상일 수도 있었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월요일 아침에 아버지를 모시고 비뇨기과로 향했다.

소변 검사, 채혈, CT, 내시경까지 이어지는 진료 과정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아버지는 힘든 표정으로 “많이 아팠다”라고 하소연하셨다.


의사는 전립선 혈관에서 출혈이 있을 뿐 신장이나 방광에는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행이라 여겼지만, 그 불편함은 오롯이 아버지의 몫이었다.


집에 돌아와 낮에는 평소처럼 지내셨으나, 저녁이 되자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소변을 보고 싶은데 나오질 않아 화장실을 들락거리시며 안절부절못하셨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부축해 안고 갈 수도 없고, 가봤자 뻔한 결과일 테니 그저 밤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몸도 마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물에 걸려 나온 고기가 펄떡이다가 점점 힘이 빠지는 모습이, 지금의 아버지와 꼭 닮았다.


기저귀를 해드려도 화장실만 찾으시니, 그 정신이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인지가 흐려진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자정이 넘어 아버지의 숨결이 고르게 들리자 안도하며 안방을 나왔다. 새벽 네 시, 문틈으로 바라본 아버지는 겨우 잠드신 듯 콧바람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형광등을 끄고 나도 잠시 눈을 붙였는데, 이내 화장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일어나셨다. 밤새 누워 계시더니 다시 걸어가시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잘 보셨어요?”

“조금 나왔어.”

평소의 담담한 목소리였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의사는 소변줄을 차거나 시술을 권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작년 입원 후 섬망 증세로 고생하셨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게 노환의 탓으로. 어떤 치료도 완전한 회복을 약속하진 않는다.

그저 고통이 덜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근심을 읽으셨는지, 태연하게 말씀하신다.

“저렇게 잘 드시는데, 금방 돌아가시지 않아. 걱정 마라.”


어머니의 담담한 낙관이, 어쩌면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약해진 몸, 그러나 여전히 굳은 의지 속에서

삶이란, 죽음을 한 걸음 앞에 두고도 여전히 곶감을 깎아야겠다는 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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