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40. 마지막 고추장?!

by 큰나무

어머니는 한시도 그냥 앉아 계신 날이 없다. 새벽 눈이 떠지면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거실이며 주방, 화장실까지 쓸고 닦아 하루의 할 일을 아침 식사 전에 모두 끝내 놓는다.


그 시간까지 아버지는 밤새 화장실에 몇 번이나 다녀오셨는지 피곤하셨는지, 늦잠 속에 잠겨 계신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깨워 식사를 차려 드리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작은 소반 앞에 노트를 펼쳐 일기를 쓰고 한문 공부를 하신다.


요즘 세상에 한문을 공부하는 이가 드문데, 어머니는 뜻을 알아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며 늘 즐거워하신다. 농사일을 접은 뒤부터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해 쌓아 온 노트만도 책상 높이에 이를 정도다. 거기에 일본어 공부까지 더해, 결국 87세 되던 해에는 자서전까지 펴내셨다.


『고개 들어 하늘 보니 여든일곱』.

그 책을 펴내던 날, 한옥펜션을 빌려 출판기념회를 열어 드렸는데, 어머니는 환갑잔치보다 더 훌륭한 잔치라며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행사 후 가족들에게 한 권씩 책을 나누어 드렸는데, 어머니의 막냇동생—그러니까 외삼촌께서 책을 읽고는 “우리 누님이 이렇게 고생하며 사신 줄 몰랐다”며 울먹이며 전화를 주셨다.


그 뒤로 외삼촌은 해마다 어머니께 선물을 보내신다. 몸이 불편하신데도 텃밭에서 길러 수확한 농작물을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부쳐 주신다.

그 선물을 받아보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내가 친정식구한테 선물 받아보긴 네가 처음이다.”


그런 어머니가 요즘 부쩍 자주 머리가 아프다며 몸져누우시면, 아버지는 “네 어머니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사노…” 하며 애가 타신다. 요양원은 싫고, 딸네도 아들네도 다 편치 않다 하시니, 결국 어머니가 기운을 차리시는 게 곧 아버지 삶의 힘이 된다.


아버지는 옆에 앉아 밥 한 숟가락이라도 뜨라고 조르고, 어머니는 머리가 맑아질 때까지 하루 이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신다. 그런데 그 두통의 간격이 조금씩 좁아지니, 마음 한구석에서 걱정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고추장을 담가야 한다며 누님에게 찹쌀과 고추를 방앗간에 찌여 오라고 성화를 하신다. 아픈 몸으로 무슨 고추장이냐며 누님이 말려 보지만, 결국 발걸음은 방앗간으로 향하고 만다.


그렇게 어머니는 올해도 자식들 숫자에 맞춰 고추장 그릇을 준비해 햇살 아래 가지런히 펼쳐 놓으신다.

어머니의 정성이 스며든 그 고추장을 우리가 또 한 해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올해가 마지막으로 담그는 고추장이 될 거라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몸만 조금이라도 움직이실 수 있다면, 어머니는 내년 가을에도 분명 고추장을 손수 담그실 것이다.

아니 내년에도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이 유지되시기를...

그리고 어머니의 삶이 늘 그랬던 것처럼, 정성으로, 사랑으로,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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