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청강회
ㄷ어제는 사촌모임 ‘청강회’에 참석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자리였지만, 늘 그렇듯 반가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라 모두들 한 겹씩 더 챙겨 입었고, 나도 내피를 하나 더하고 마스크와 털장갑까지 갖추었다. 모자를 쓸까 말까 망설이다 쓰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지하철 안은 저녁 약속 탓에 붐볐지만, 이런 작은 부쩍 임도 오랜만이라 싫지 않았다.
우리 사촌모임에는 이름도 있다. ‘청강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호인 ‘청강(淸崗)’에서 따온 이름이다. 모임은 30여 년 전에 결성되었고, 한때는 가족까지 함께 모여 서른 명, 마흔 명이 넘게 모인 적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장자 중심으로 축소되었지만, 그만큼 더 단단해진 정이 있다.
어제 참석한 형님들 중 가장 연장이신 고종사촌 형님은 41년생, 85세. 공무원 2급으로 정년퇴임하신 분이다. 70대 형님 두 분은 중소기업 대표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60대 중반 형님들 중에는 대학 교수로 퇴임하신 분, 한의사, 의류 매장 운영자 등 각자의 길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나와 50대 초반의 동생이 있으며, 동생은 지하철 부역장으로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예전에는 형님들과 함께 골프도 즐겼는데, 내가 건강 문제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되어 지금은 그 시간이 조금 아쉽기만 하다.
나이가 들수록 모임의 첫마디는 자연스럽게 건강 이야기다. 85세 형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 검진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하루 만이천 보를 걸으며 바둑으로 시간을 채운다는 근황을 들려주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소주잔을 부딪치며 건배했지만, 올해는 더 부드러운 막걸리잔으로 바뀌었다.
뭐 특별할 것 없는 사촌들의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만이 느낄 수 있는 혈연의 정이 있다. 1년에 두세 번 만날 뿐이지만, 각자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삶을 염려하며 응원을 보낸다.
이번에도 아버지께 내가 청강회에 다녀왔다고 말씀드리면, 늘 그러셨던 것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으실 것이다. 그분의 그리운 누이들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외아들인 나를 두고 사촌들과의 우애를 더욱 소중히 여기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그 모습이 나에게도 은근한 힘이 된다.
내년 봄에는 꽃구경을 겸해 한두 시간 산책한 후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한때는 내가 모임 일정을 챙기고 주도했지만, 아픈 뒤로는 다른 형님이 맡아 진행한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편하고, 형님들의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이것 또한 작은 형제애의 모습일 것이다.
형님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그리고 청강회의 이름처럼 맑고 반듯한 우리의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