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4기 극복기

27. 두 번째 추적 정기검사

by 큰나무

절제 수술 후 스물두 달,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난 지도 어느덧 열두 달이 되어 간다. 그동안 하루 만 보 걷기를 목표로 꾸준히 걸었다. 늘 지키지는 못했지만, 멈추지 않으려 애썼다. 식사량은 여전히 정량을 채우지 못한다. 체력은 늘 모자라고, 사소한 일 하나에도 부담이 따른다.


이렇게 1년을 보냈다. 먹고, 쉬고, 걷는 일의 반복. 그 사이 책 몇 권을 읽었고, 영어 문장을 조금씩 써보았으며, 브런치 스토리에 몇 줄의 글을 남겼다. 본가를 오가며 부모님을 살피는 일도 일상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이었지만,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둘레길을 걸으며 바람과 꽃, 나무와 새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 고요한 동행의 시간들이 내 마음에 잔잔한 호수 하나를 남겨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여섯 달마다 돌아오는 정기검진 날이 두 번째로 찾아왔다. 위절제 환자는 검사 전날 점심에 반찬 없는 흰 죽만 먹고, 저녁부터 금식해야 한다.


다음 날은 위내시경과 가슴·복부 CT 촬영이 기다린다. 검사일이 가까워지자 잊고 지내던 막연한 불안이 구렁이 담 넘어오듯 스멀스멀 목까지 차올랐다.


점심에 먹은 흰 죽은 이미 파도에 휩쓸려간 듯, 밤새 ‘꼬르륵’ 소리로 고요를 깨운다. 유튜브를 이리저리 넘기다 잠든 것인지, 어느새 둘째 딸의 새벽 출근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몸을 일으켜 병원 갈 채비를 한다. 수면내시경을 해야 하니 보호자는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아내의 동행은 언제나 굳건한 대들보 같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았던가. 병동마다 환자와 보호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특히 암병동의 공기는 더 무겁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들, 우중충하고 캄캄한 표정들. 나 역시 처음 진단받았을 때 저런 얼굴이었으리라.


위내시경은 오전 10시, CT는 오후 4시. 하루 종일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검사 자체도 고된 일이지만, 순서대로 지체 없이 진행되는 것만으로도 환자에겐 큰 위안이다. 아프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겪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다.


일주일 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조금 여유 있게 도착했지만 지하주차장은 공사 중이라 몇 바퀴를 돌아도 자리가 나오지 않는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는 순간, 출구 쪽 오르막길에 막 비어 나온 듯한 공간이 눈에 띈다. 주차 구역은 아니지만 그곳에 급히 차를 세운다. 이런 것에 또 묘한 희열을 느낀다.


진료실 앞에서 접수하고 체중과 혈압을 재고 나니 그제야 숨이 고른다. 아내가 건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전광판에 뜬 내 이름을 바라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입안은 바짝 마르고, 심장은 귓가에서 콩닥거리는 듯하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큰일 없이 잘 지냈다고 답하자, 검사 결과도 이상 없단다. 예상은 했지만 진료는 너무 간단하다. “6개월 후에 CT 다시 찍죠.” 이 한마디로 끝이다.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내 위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사진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지만, 의사는 “볼 것도 없다”며 잘라 말한다.

체중이 늘지 않는 것도 물어봤다. 얼마나 더 지나야 살이 붙느냐고. 돌아온 답은 수술 전부터 들었던 말, “위절제 환자는 원래 살이 안 찝니다.”라는 핀잔뿐이다.


혈액검사 수치 중 기준치를 벗어난 것들을 묻자, 이 또한 “이 정도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말로 끝났다.


진료 시간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나오며 묘한 허탈감이 밀려온다. 그래도 결과에 이상이 없고, 6개월 후에 다시 보자는 말 한마디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갑상선 기능 항진 약의 용량을 줄여 처방받으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이제 또 내년 6월을 기다리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암 환자는 언제, 어디로 전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생이 다하는 날까지 가슴 졸이며 살아간다. 그 운명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고, 먹을 수 있는 만큼 골고루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


다음 검사에서도, 또 그다음 검사에서도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조용히, 간절히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아버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