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44. 아버지 밥상

by 큰나무

안방에 둥그런 상을 펴고 행주로 한 번 깨끗이 훔친다.

반찬을 하나씩 옮겨 담는다. 김장김치부터 아내가 정성껏 준비해 온 밑반찬들, 찌개와 국, 그리고 막 구운 생선까지 차례로 자리를 잡는다. 상 위가 어느새 푸짐해진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묻는다.

“이게 뭐냐? 저게 뭐냐?”

마치 말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하나하나 확인하신다. 드셔보면 다 아실 텐데도, 그 질문은 식사 때마다 반복된다.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 아버지는 참 잘 드신다. 틀니를 끼고 계시지만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국에 말아 깨끗이 비우신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드시고, 맛없다고 남기는 법이 없다. 이 점을 어머니는 늘 자랑처럼 여기셨다.


식사를 마치면 과일이나 커피로 디저트를 드신다. 커피에는 꼭 율무차를 섞어 드시는 것이 아버지의 오랜 취향이다. 간식으로는 떡, 빵, 고구마, 과자 가릴 것 없이 드신다. 아버지 앞 접시에 놓인 음식은 늘 말끔히 사라진다. 포만감을 잘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학창 시절 배를 곯으며 지냈다는 이야기를 수백 번도 더 들려주셨다. 그때의 배고픔이 몸에 새겨져,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본능처럼 무의식 속에 남아 계신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렇게 잘 드신다. 원래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지금도 그 체격을 유지하고 계시니 나보다 체중이 스무 킬로그램쯤은 더 나가실 듯,


부축하거나 돌봐드릴 때면 그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져 힘에 부친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로 본다면, 지금의 아버지는 식욕과 수면욕이 가장 커 보인다.


식사 시간과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시간을 빼면, 앉아서 졸거나 잠드시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가만히 계시면 저절로 졸음이 오는지 고개를 떨군 채 잠에 빠지신다. 누워서 주무시라고 해도 이 자세가 편하다며 앉아 계신다.


그럼에도 집안의 대소사는 늘 머릿속에 또렷이 담아두고 계신다. 때가 되면 먼저 말씀하시고, 필요한 지출은 빠짐없이 챙기신다.

다행히 아직 치매 걱정은 안 한다.


몸은 느려졌어도 생명의 끈은 꼭 붙잡고 삶을 대하는 의지는 여전히 단단하다.

아버지는 오늘도 밥상 앞에서, 그리고 일상의 작은 기억들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계신다.

잘 드시고, 잘 주무시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붙들고 계신다. 그 모습이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고맙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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