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45. 어머니의 고단한 시간

by 큰나무


아버지의 밥상은 언제나 어머니의 정성과 희생 위에 놓여 있다.

옛말에 일부종사라는 말이 있듯, 어머니의 삶은 오롯이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이어져 왔다.


새벽부터 해 질 때까지 동동거리며 농사일을 하고, 그 와중에 자식들을 키워낸 세월은 말할 것도 없다. 누구에게나 그 정도 수고는 당연한 몫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퇴직한 뒤, 도시로 이사와 어머니는 댄스반과 일본어반을 함께 다니며 십오 년 남짓을 동행하셨다. 그 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때라고, 어머니는 가끔 웃으며 회상하신다. 그러나 여든을 넘기면서 다리 힘이 빠지고, 함께 동문수학하던 친구들마저 병원 신세를 지다 순서 없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 이후 두 분의 삶은 집 안에 머물렀다. 그래도 어머니는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자식들을 보살피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아오셨다. 이제는 거동조차 불편해졌지만, 어머니의 하루는 여전히 아버지를 중심으로 흐른다.

그 사이에도 쪽상을 펴고 틈틈이 한문 1급 공부를 하시네. 뜻을 알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게 그렇게 재미있다고,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한자리 크게 했을 거라고 ,


집안 청소와 빨래, 식사 준비는 기본이다. 아버지가 실례라도 하시면 벗어 놓은 옷가지를 챙기고 바닥을 다시 닦아야 한다. 구십이 넘은 어머니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다. “이 나이에 밥 해 먹이고 청소까지 하려니 나도 죽겠다”는 하소연이 입버릇처럼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요양병원 이야기가 나오면 단호해지신다. 자식들이 그런 말을 꺼낼까 봐 미리 선을 긋는다.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믿고 계신다. 그 말만 나와도 얼굴이 풀어지고,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 보다 생각하시는 듯하다.


곡기가 끊어지면 죽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신 아버지는 오늘도 정성껏 차려진 밥을 남김없이 드시고, 잠자리에 들고, 그것만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 하루를 가능하게 하는 건 전부 어머니의 몫이다.


어머니의 입맛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버지의 반의반이라도 따라갔으면,

고기나 생선도 입에 맞지 않으신지 김치 하나면 족하다고 하시네. 잘 드셔야 기운이 난다고 말해도 늙은이가 이 정도면 됐지 무슨 힘이 난다고 푸념하신다.


자식들은 어쩌다 한 번 들러 안부를 묻고, 조금 도와준 뒤 돌아가면 그뿐이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기온은 뚝 떨어진다.

오늘도 전화를 건다.

식사는 잘하셨는지,

방은 따뜻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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