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56. 살아남은 자의 숙제

by 큰나무

언제까지 이대로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두드린다.


모두들 손발 들고 쉬어야 할 때라고 말하는데

무슨 일이든 경제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놀고먹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건 오히려 돈이 많을 때나 가능한 사치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뒷광에 쌓아둔 재물이 넉넉했다면 국내외로 여행이나 다니며 소일거리 삼아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계속해서 놀고먹을 수는 없다. 살아 있는 이상, 생활은 이어져야 하니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지난 중병을 얻었을 때, 그때 세상을 떠났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그런데 나는 살아났고, 살아났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왜 병이 왔는지도, 왜 살아남았는지도 아직은 알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 찾지 못할 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은 시간을 살면서, 계속 묻고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실마리 하나쯤은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고 있다.


첫째는 이대로 쭉 놀면서 사는 삶이다. 산과 공원을 걷는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영어와 한문을 공부하고, 일기글을 쓰고 친구들과 바둑이나 당구 골프 같은 취미로 하루를 채우는 삶. 생각만 해도 마음은 편해진다. 그러나 이 선택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그 조건에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시골과 도시를 오가는 삶이다.

머물 수 있도록 쓰러져가는 시골집을 대수선 하여

5도 2촌이든, 4도 3촌이든 고향을 자주 왕래하며 몸을 돌보고, 밭에서 먹거리를 키워 자급자족하는 생활. 가족이 먹을 만큼의 채소를 기르고,


차후에 여건이 허락된다면 버섯 재배를 위한 작은 온실을 마련해 생산과 판매까지 이어가는 그림도 그려본다. 자연 속에서의 노동은 몸은 고되더라도 마음만큼은 덜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보지 않은 일이고 막연한 동경에 온실 속 재배는 온 힘을 다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엔 50평 크기로 시작하는 그림이다. 시설 투자비도 고려대상이다.


셋째는 이전 직장으로의 복귀는 연금을 타야 할 시점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이 선택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 나이에 영업은 쉽지 않고, 오래 유지해 온 거래처조차 언제 다른 곳으로 옮겨갈지 몰라 늘 불안 속에 살아왔다. 이제는 내 월급조차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련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걸,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남는 선택지는,

내 일을 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나만의 자리를 잡고 앞으로 10년 이상 이어갈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목표다.

그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넷째 선택이다.


이미 갖고 있는 자격증을 활용해 경제활동을 하는 일.

물론 어렵다는 핑계처럼 보이는 이유들도 많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기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없고, 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재발하거나 전이될까 두렵다. 허리 측만증으로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어 자주 일어나 몸을 풀어야 한다. 쉬는 날은 일요일만이라는 게 제일 큰 단점이다. 후에 조정할 수도 있겠지만,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 본가를 자주 오가야 하고, 고향의 조금 있는 전답과 임야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게다가 경제는 어렵다고 하고, 초보자에게 경쟁력은 없다. 한 집 건너 사무실이 있을 만큼 이미 시장은 포화 상태다. 경험 부족은 언제나 불리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도 분명 있다.

자격증에는 정년이 없고, 초기 투자금도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생각보다 크지 않다. 책임은 따르겠지만, 실무 경험을 쌓으며 2년 정도만 버틴다면 원하는 나이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젊었다면 어느 길이든 일단 저질러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은 다르다. 한 번의 선택이 남은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에, 생각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은 깊게, 결정은 빠르게’ 하라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면 쉽지 않다.


가족들의 동의와 응원이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마저도 넘기 어려운 산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하나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아직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다시 한번 길을 고민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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