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57. 세월을 낚다.

by 큰나무

세월을 낚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얼음낚시를 가잔다.

“화천 산천어 얼음낚시.”

초등학생이던 시절, 가평 청평으로 얼음낚시를 몇 번 데려간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단다.

역시 어릴 때의 경험은 그렇게 오래 남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 모양이다.

좀 더 많이 데려 다니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그땐 왜 그러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늦게서야 밀려왔다.


화천까지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데,

아들 녀석이 말한다.

“운전은 내가 할게.”

옆에서 아내도 등 떠민다.

아들이랑 좋은 추억 하나 더 만들라며.


좋다, 가자.

강추위가 온다니 월요일로 정했다.

항암치료 이후로 나는 유독 추위에 약해졌으니,

조금이라도 덜 추울 때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일요일 저녁,

창고에서 아들 초등학생 때 쓰던 낚시도구와 접이의자를 꺼냈다.

내복, 장갑, 방한복, 보온 물통까지 챙기고 나니

마치 오래된 시간을 다시 꺼내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 9시 개장.

7시 전에는 출발해야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어디만 가려하면 깊이 잠들지 못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불속에서 무심코 휴대폰을 켠다는 것.

궁금한 것도 없는데, 버릇이 되어버렸다.


새벽,

눈이 하얗게 내려 차 앞유리를 긁어내야 앞이 보였다.

시간은 자연스레 늦어졌다.

아직은 서툰 아들의 운전.

완전히 믿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연속되는 하품에 눈을 붙일 수 없어

나는 계속 말을 걸고 전방을 살폈다.


올림픽대로에 접어드니

개미 떼 같이 줄지은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 시작한다. 어딜 가는지,


춘천을 지나 화천에 들어서자

눈은 이불처럼 포근하게 깔려 있고,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몇 마리나 잡을까.

아니, 몇 마리가 잡혀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도착했지만

이미 얼음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얼음구멍마다 누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늦었지만 빈 구멍을 찾아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강태공은 세월을 낚는다 했던가.

이놈의 산천어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뚫어지게 얼음 구멍을 들여다보며 손을 놀려도

가끔 왔다가, 그냥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세월이 흐르며 산천어도 지능이 발달했는지

눈먼 고기 하나 없다.

예전엔 한두 마리는 꼭 잡아 손맛을 봤는데

오늘은 기별조차 없다.


점점 지치고,

몸은 급격히 피곤해진다.

눈이 빠져라 물멍을 때린 지 세 시간.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곳저곳에서

“잡았다!”는 환호성이 들릴 때마다

괜히 마음이 까칠해진다.

그래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집념으로

얼음구멍에 오감을 집중한다.


어린애도 잡았다고 소리 지르는데

우리 부자는 공수래공수거.


아마도 초등학생 때 쓰던 낚싯대에 달린

가짜 미끼가 삭아서

고기 입맛을 돋우지 못했을 거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낚시를 접고 일어섰다.

" 인생이 이런 거란다"

세월을 낚는 것도 쉽지 않고,

살아 있는 고기를 낚는 일은 더 어렵다.


그래도 좋았다.

오랜만에 아들과 나란히 앉아 보낸 그 시간.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지만

그 하루는 분명

우리 부자 사이에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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