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58. 아직 풀지 못한 숙제

by 큰나무

꼭 풀어야 할 숙제가 가슴 한구석에 오랜 시간 한겨울 고드름처럼 맺혀 있다.


고향 선산 바로 아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그 당시에 처음 알게 된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지인의 소개로 아버지는 그를 선산 관리인으로 들였다.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 하여, 산을 봐주는 대신 터를 내주었다.


처음에는 참 성실해 보였다. 아버지는 필요한 살림을 보태주고, 말 한마디라도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매운 양념에 버무린 닭볶음탕이었다. 그러던 중 집에 불이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집은 몽땅 타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밥그릇과 이불을 챙겨 들고 달려가 위로했고, 다시 일어서라는 뜻으로 당시 400만 원이나 큰돈을 보태주셨다.


조립식으로 다시 지은 집은 이전보다 훨씬 장사에 적합해 보였다. 이러려고 불을 냈을 거라고 그때의 사람들은 감히 추측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데 알 수 없으니 따질 수도 없었다. 닭볶음탕도 한 번 맛을 보았는데, 음식은 제법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산골에서 농사만으로는 살기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음식을 팔아 보태라며 아버지는 손님도 데려가 주고, 주변에 소개도 해주었다. 그 선의가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메뉴도 더해지고 장사가 잘되기 시작하자 그는 집과 땅을 팔라고 요구했다. 선산 관리인으로 들어왔으니 매각은 불가하고 장사를 계속하려면 나가라고 했다.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고, 2년의 재판 끝에 우리 쪽 승소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선산 바로 앞 논을 사서 코앞으로 이전해 갔다. 이미 감정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전한 식당 옆에 붙어 있는 우리 종답을 팔라고 요구한다. 증조부 제사를 위한 위토답이고, 세 명의 연명 등기가 된 땅이다. 팔 수 없다.


그가 수십억을 벌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지방도시에 여러 지점이 생기고 골짜기 일대의 논을 사들이며 식당을 확장하고 아방궁처럼 변해가고 어느새 호랑이 없는 토끼가 왕처럼 굴림하고 행세하고 있다.


이전하는 집과 식당을 짓는 과정을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경계선에서 약 1미터 정도 띄워 지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일이 년 후에 보니 그의 집과 우리 위토답 사이에 비닐하우스 같은 구조물이 들어서 있었다. 비닐하우스 끝에는 수로까지 파여 있었다. 그곳은 조리실로 쓰이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만큼 우리 땅을 침범한 셈이다.

하지만 기억과 추측만으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답은 하나, 정확한 경계는 측량뿐이다. 측량에는 비용과 시간이 든다. 그리고 결과가 현상태의 경계가 맞다고 나오면, 나는 오해를 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는 확인해야 봐야 한다.


만약 내 기억이 맞고 경계선을 넘어왔다면, 우리는 분명히 철거 내지 사용료를 요구해야 한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20년이 지나면 그는 점유취득시효를 주장할 수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그 시점이 2027년까지이다.


그가 그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성격과 태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해 보이고, 경계 침범을 인정할 사람도 아니다. 결국 또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다.


가족들은 말한다.

“그까짓 땅 조금 주고 말아라. 더 싸워서 뭐 하냐.”

하지만 눈앞에서 땅을 빼앗기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파괴적인 싸움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앞으로 내가 선산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된다면 해코지하기 위해 분명 무슨 트집이라도 잡을 것이다.

이 사람과 서로 공존할 수는 없는 걸까.

이쯤 되면 질문은 토지를 넘어선다.


우주는 왜 침묵하는가.

왜 나쁜 사람은 벌 받지 않고 더 잘 사는가.

나의 침묵과 회피는 비겁함인가, 아니면 또 다른 생존 전략인가.

나는 이 증오와 미움을 끝내 마음에서 떼어낼 수 있을까.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용기와 힘이 필요한 시점이다.

땅의 경계선처럼, 내 마음의 경계도 분명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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