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65. 한밤의 물방울소리

by 큰나무


고요한 밤이 되면 집안의 작은 소리들이 유난히 또렷해진다. 지난겨울 내내 싱크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깜깜한 방안의 정적을 깨웠다.


일찍 잠이 들든 늦게 잠이 들든 새벽 한두 시쯤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버릇이 생겼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누우면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면 삼사십 분은 금세 지나간다. 유튜브라도 한번 켜면 한 시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간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아침에 제때 일어나지 못하고, 일어나더라도 머리가 무겁고 개운치 않다. 혹시 나만 그런가 싶어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나이 탓이지 뭐” 하며 웃어넘긴다.


그런데 지난겨울부터 싱크대 수전에서 떨어지던 물방울 소리가 요즘 들어 더 또렷하고 크게 들린다. 한겨울에는 동파가 걱정되어 일부러 수도를 조금 틀어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해두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집은 일부러 틀어놓은 것도 아닌데 저절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으니, 덕분에 동파 걱정 없이 겨울을 지나온 셈이다.


요즘은 따뜻한 공기가 바람을 타고 목덜미를 감아 도는 계절이다. 이제는 그 물 떨어지는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 핑계도 더 이상 댈 수 없다.


검색을 해보니 수도꼭지 안의 고무 패킹이 오래되어 누수가 생기는 것이라, 수전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싱크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어디를 어떻게 풀고, 무엇을 빼내고, 무엇을 갈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예전 같으면 눈에 보이는 대로 계량기 잠그고 수도꼭지를 갈면 되었던 것 같은데, 요즘 것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친구에게 연락했다. 회사 다니다가 집수리와 리모델링 일을 시작한 지 벌써 십여 년이 넘은 친구다. 이제는 사업자등록증까지 낸 어엿한 사업가다. 시간 될 때 한번 들러 달라고 했더니 드디어 집으로 왔다.


친구 말로는 얼마 전 자기 집 싱크대 수전도 새것으로 바꾸었는데, 아내가 무척 좋아했다며 우리 집 것도 신식으로 교체하라고 한다. 교체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생각보다 단순해 보였다. 알면 쉽고, 모르면 참 어려운 일이다.


좁은 싱크대 아래 공간에 머리와 팔을 밀어 넣고 몸을 비틀어 가며 작업하는 모습이 꽤 힘들어 보였다. 친구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렇게 삼십여 분쯤 지나자 새 수전이 말끔하게 자리 잡았다.


물방울 소리가 사라진 싱크대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아내도 고맙다며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했더니 일이 바쁘다며 서둘러 가야 한다고 한다.


친구를 배웅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의 표정이 어딘가 미묘하다. 디자인이나 크기가 마음에 쏙 들지 않는 눈치다. 아직 낯설고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말하며 다독였다. 한번 설치한 것을 다시 바꾸기도 쉽지 않다.


사용하는 데 불편함만 없다면 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마음에 쏙 들면 좋으련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아내가 이런 작은 일조차 혼자 부딪히며 살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싱크대에서 물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 고요한 밤,

십 년 묵은 체증이 집라인 타듯 내려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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