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나무늘보의 걸음과 모정밭
서너 발 걷고는 허리를 한 번 펴고 쉰다.
다시 몇 걸음 옮기고 또 멈춘다.
과연 얼마나 걸으실까, 어디까지 걸으실까 싶었는데 아버지는 끝내 주저앉지 않고 우리가 밭을 정리하던 모정밭까지 걸어오셨다.
무엇이 궁금하셨을까
대략 이백 미터쯤 되는 거리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거리가, 지금의 아버지에게는 작은 순례길처럼 느껴졌다.
모정밭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특별한 곳이었다. 밭 옆에는 이름 그대로 모정이 있었고, 그 곁에는 커다란 아름드리 밤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베시감나무와 두리감나무까지, 지금은 베시감나무만 남아있다.
한여름이면 그 밤나무가 드리운 짙은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오가다 모정에 걸터앉아 쉬어가기도 하고, 길손들은 잠시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을 품어주던 자리였다.
그런데 새마을사업이란 이름 아래 길을 넓힌다는 이유로 모정도, 밤나무도 사라졌다. 우리 밭도 덩달아 깎여 나가 길가 모서리에 붙은 자그마한 밭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겨우 열다섯 평 남짓한 크기다. 하지만 그 작은 땅은 한때 우리 가족에게 화수분 같은 곳이었다. 어머니는 상추며 쑥갓이며 시금치 무 열무 고추며, 이것저것 심어두면 누구든 필요할 때 뜯어다 먹을 수 있었다. 작아도 넉넉한 밭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밭도 사람도 그냥 두지 않았다.
누님도 심신이 약해져 예전처럼 밭을 돌보기 어려워졌다. 작년에는 호박을 심었는데, 풀과 넝쿨이 뒤엉켜 밭을 온통 덮어버렸다. 애써 심은 보람도 없이 겨우 주먹만 한 애호박 몇 개와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 몇 개만 거두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자주 내려와 돌보겠다고 했다. 뭔가 좀 제대로 심어보자고 하니, 어머니와 누님은 콩과 고추를 심자고 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작은 밭은 다시 가족의 일이 되었다. 어머니와 누님, 그리고 내가 함께 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밭을 조금 매다가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다며 툇마루에 누우셨다.
누님과 나는 삽과 괭이를 들고 흙을 뒤집고 이랑을 만들었다. 비닐을 씌우고 흙을 덮는 일까지 하고 나니, 작은 밭 하나 정리하는 데도 이마에 땀이 뚝뚝 떨어지고 발끝은 무거워졌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이 이제는 큰 노동이 되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시간과 품, 왕복 기름값까지 생각했을 때 밭에서 거두는 수확보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분명 그렇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어찌 계산만으로 움직이겠는가.
이 작은 밭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흙냄새와 땀, 가족이 함께 서 있는 시간, 그리고 지나간 날들의 그림자가 묻어 있다. 그리고 주위사람들 보기에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할 것이다.
아버지는 그 밭 곁에 앉아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계셨다.
말없이, 아주 오래.
그 눈길 속에 어떤 생각이 머물고 있었을까.
세월의 야속함을 탓하고 계셨을까.
예전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이 서러우셨을까.
아니면 모정이 있던 시절, 밤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계셨을까.
혹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셨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흙을 일구는 모습을 보며, 당신도 한때 땀 흘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더듬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걸음은
몸은 느려졌어도 마음은 아직 그 길을 기억하고
조금은 느리게, 때로는 쉬어가며
그래야 사라져 가는 것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