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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 극복기

4. 오늘의 고뇌

by 큰나무


유난히 매서운 겨울 아침, 영하 14도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라는데 어제는 차마 현관문조차 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을 다잡고 무겁게 눌러쓴 모자, 코끝을 감싼 마스크, 목도리, 두툼한 파카와 장갑까지 온몸을 단단히 감싸고 밖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잔잔한 바람, 살을 에일 듯한 추위도 마음먹은 걸음을 막진 못했다.


그제는 둘레길을 두 시간 넘게 걸으며 12,000보를 채웠다. 어제는 미처 걸지 못한 발걸음을 만보라도 채우겠다는 다짐으로 오늘은 더 힘차게 나아간다. 공원까지 2,500보, 공원 10바퀴에 5,000보, 집으로 돌아오는 길 2,500보. 이렇게라도 걷다 보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겠지. 따스한 오후 햇살이 등을 토닥이며 길동무가 되어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이름 모를 할아버지, 할머니들. 각자의 건강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말 못 할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서인지, 이 추운 날에도 묵묵히 걷고 있다. 저 사람들은 걷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할까? 나처럼 앞날을 걱정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할까?


암을 이겨냈지만, 그 후의 삶은 또 다른 싸움 같다. 몇 년이 남았을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경제활동은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사회와는 어떻게 다시 연결되어야 할지… 마치 장미넝쿨처럼 얽히고설킨 생각들이 마음 한구석을 채운다. 그 생각들이 정리된다고 마음이 편안해질까? 그래도 일의 순서를 하나씩 세우고 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 길지 않은 내 미래도 그렇게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뇌 없는 삶은 어쩌면 나태하고 무의미한 것 아닐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위로해 본다. 어차피 사람은 삶의 부딪힘 속에서 견디고, 이겨내고, 그 안에서 아주 작은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오늘도 이렇게, 걷고, 생각하고, 버텨내며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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