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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상

11. 호박 고구마

by 큰나무

호박고구마

껍질을 벗기자마자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 그리고 황금빛 속살의 눈부신 유혹.

그 이름만으로도 겨울이 떠오르는 호박고구마.

창밖의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이보다 더 완벽한 겨울 먹거리가 있을까?


호호 불며 한입. 부드럽게 베어 문 순간, 달콤하고 촉촉한 그 맛이 혀끝을 감싸며 마음까지 따스하게 적셔준다.

나는 이 고구마가 참 좋다.


어린 시절, 먹을 것이 귀했던 산골 마을의 가을과 겨울.

산과 들에서 따온 감, 밤, 대추는 귀한 간식거리였고, 겨울이면 통아리에 저장된 고구마가 우리 가족의 주된 먹거리였다.

김장김치의 아삭함과 뒷마당 장독에서 꺼낸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와 함께 찐 고구마를 먹던 그 기억.

그 시절은 물고구마가 주였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소박하고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은 피자와 통닭, 빵 같은 화려한 음식을 더 좋아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구마가 좋다.

아픈 몸으로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시절에도

생고구마는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 달콤하고 담백한 맛은 힘든 나날을 견디게 해주는 친구 같았다.


그런데 요즘 고구마가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인다니 조금 서운하다.

“답답할 때 ‘고구마 먹은 것 같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물론 고구마를 먹다 보면 목이 메이거나 답답한 순간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따뜻한 물 한 모금, 동치미 한 입으로 충분히 해결되지 않던가.


그래도 나는 여전히 고구마를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도 한입 베어 물고, 김치 한 조각을 곁들여 먹다 보면

어느새 또 하나의 고구마를 손에 쥐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작은 기쁨이 내 겨울의 소소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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