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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 극복기

7. 설 명절, 어머니의 정성

by 큰나무


지난 12월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은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손끝 저림과 손톱 색이 변한 것만 빼면 큰 후유증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니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며 반가워했다. 그들의 따뜻한 말에 기뻤지만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두려웠다. 앞으로의 날들이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몸이 온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일상 속 작은 움직임조차 조심스럽다. 예전처럼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먹는 것도 그렇다. 예전엔 한 그릇 뚝딱 비우던 내가 이제는 한 숟가락 더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천천히, 조금씩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밥상 앞에만 앉으면 그 다짐은 잊히기 일쑤다.


올해 설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예전과 조금 달랐다.

나이가 드시면서 명절 음식 수가 점점 줄어들었는데, 이번에는 부칠 전 재료들이 꽤 많아 보였다. 지난해에는 차례 준비로 몇 가지 하지 않으셨던 분이신데 말이다.


궁금한 마음에 이유를 여쭤보니,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들 항암치료도 끝났고, 아버지 병환도 나아지니 기분이 좋잖니. 마음이 좀 가벼워져서 차례 음식도 많이 하게 되더라."


어머니의 정성은 곳곳에 배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직접 시장에 다녀오셔서 잔손질이 많은 도라지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찢어 새콤달콤하게 무치셨다. 말린 토란대는 얇고 정성스레 손질되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 외에도 밑반찬 하나하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조금만 준비하기로 하지 않았어요?" 하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번 설에는 이상하게 기운이 나네. 꼼지락거리며 움직일 수 있을 때 해야지."

그렇게 정성스레 만든 음식들은 어김없이 자식들의 방문길에 바리바리 싸주신다.

늘 그렇듯, 어머니의 손끝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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