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설날 아침
밤새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어제 하루 종일 치워도 끝이 없던 눈이었는데, 아침에 또 마주하니 새삼 지겨움보다 설렘이 앞선다. 마당을 쓸다 문득 화단 돌틈을 보니, 그곳에 살림을 차린 쥐 가족들도 눈 이불속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아침부터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가족들의 마음에도 감사가 스민다.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조심스레 빌어본다.
차례를 마치고 아버지께서 교장 선생님 시절처럼 짧은 훈화를 이어가신다. 아픈 몸으로 새배를 받는 건 맞지 않는다며 손주들의 새배는 정중히 사양하시고, 대신 두둑한 세뱃돈을 건네신다.
아침 식사 후 아버지는 문밖 풍경이 궁금하신지 현관문을 열어 보라고 하신다. 내친김에 부축해 마당까지 모시고 나가니, 대문 밖까지 나선 아버지께서 "요즘 보기 드물게 많은 눈이 내렸다"라고 말씀하신다. 곧 서울까지 올라가는 길은 괜찮을지 걱정이 앞서신다.
딸들이 많은 우리 집 명절 풍경은 언제나 엇갈림이다. 나 역시 처가로 가야 하니 누이들과 얼굴 한번 보기 쉽지 않다.
결국 톡으로 나누는 짧은 인사가 명절의 전부가 되어버린 요즘 세상이 조금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