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버지의 목욕
이틀 만에 화장실에 가신 아버지는 한참을 앉아 있어도 시원찮다며 답답해하셨다. 어머니가 관장약을 두 번이나 넣어드렸지만 여전히 힘드신 눈치였다.
결국 아버지는 내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신다. 한 번 더 약을 넣고 기다리는 그 사이에 참지 못한 방귀와 함께 약물이 흘러나왔다.
옷에까지 묻자 난감했지만 아버지는 많이 불편하셨는지 딱딱해진 똥을 빨리 꺼내달라고 하셨다.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직접 손가락을 넣어 도움을 드렸다.
한참 뒤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신 아버지는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이셨다. 그제야 목욕도 하겠다고 하시니 설음식 준비로 바쁘시던 어머니께서 직접 목욕을 시켜드리겠다고 따뜻한 물을 받기 시작하셨다.
"제가 할게요." 하고 나서봤지만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본인이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이른 아침부터 잦은 일하시느라 고되셨을 텐데도 몸이 불편한 남편을 챙기시는 어머니는 여전히 대단하셨다.
목욕을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신 아버지는 개운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제 제수용 밤 깔 테니 가져오너라.”
그제야 나는 문득 깨달았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분주한 설 명절의 풍경 속에서 우리 가족의 정은 이런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어떤 모습일지라도 내년에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설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