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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야기

21. 어머니의 결단

by 큰나무

70여 년 전,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간 학자금으로 많은 빚을 떠안게 되었고,


당시 국민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 법대를 졸업한 아버지는 큰 꿈을 품고 도시로 나가고 싶었지만, 남다른 집안 사정과 할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고향에 남아야 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돼지를 키우며 빚을 갚아 나갔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농협 조합장에 당선되어 재임까지 6년간 근무했다. 젊은 학도가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선다는 내용이 회자되어 경향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그러나 조합장으로 지내는 동안 잦은 술자리로 인해 가정은 마치 하숙집처럼 변해버렸다.


임기를 마친 후 어머니는 아버지의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데 일조하였다. 당시에는 임용고시 없이 학위만 있어도 교사로 채용되던 시절이었다.


학교 관계자가 아버지에게 학교에 나오도록 요청했으나 아버지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극구 사양하였는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강하게 설득하여 교사의 길을 걷게 했고, 덕분에 아버지는 30년 넘게 교직에 몸담을 수 있었고 교장선생님으로 퇴임하여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번의 결단은 빚보증 문제였다. 어느 날 저녁, 자전거를 타고 퇴근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외사촌 형님이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학교까지 찾아와 빚보증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보증을 서면 재산상의 큰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 후 적극 반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승낙한 상황이라 번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어머니는 직접 나서서 빚보증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전했다.


결과적으로, 그분의 사업은 실패했고 아버지 대신에 보증을 선 다른 분은 자신의 집까지 잃게 되었고 평생 빚의 꼬리가 붙어 시달려야 했으며 사후에 자식들이 빚에 대한 상속 포기각서까지 써야 했다.


만약 어머니의 결단이 없었다면,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던 선산과 논밭도 모두 사라졌을 것이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인생은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감정이나 작은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머니의 현명한 결단이 결국 가족의 평온한 삶을 지켜낸 것이다.


참고 : 어머니의 자서전 2020년

"고개들어 하늘보니 여든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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