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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상

17. 나의 집무실

by 큰나무


푸르른 5월, 2년 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서니, 앞서 가는 사람도 흔들리고 길가의 전봇대도 흔들렸다. 파란 하늘의 흰 구름조차 내 눈앞에서는 뿌옇게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방 한 구석을 차지하며 아내와는 이별 아닌 이별과 자발적 고립이 시작되었다. 내 방엔 책상과 의자가 있었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 몸을 비틀어 보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했다. 점점 게으름이 늘어가는 듯했지만, 꾸준한 걷기 운동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치료 일정에 맞춰 체력을 유지해야 했으므로, 폭염의 한여름에도 삭풍의 한겨울에도 꺾이지 않고 걸었다.


10번의 항암치료를 받은 후 드디어 수술 일정이 잡혔고, 수술 후 다시 12번의 항암 치료를 합하여 20개월 동안에 투병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나의 경험을 담아 『괜찮니? 괜찮아! (위암 4기 극복기)』 전자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뭐 특별할 것도 없고 잘 쓰인 것도 아니라고 치부하지만 나와 같은 환우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응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어떤 의자가 가장 편할까 고민하던 중, 지인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안락의자를 발견했는데 앉아보니 내 허리에 꼭 맞는 듯 편했다.


집에 돌아온 후, 온라인 중고 장터를 자주 들여다보면서도 잊고 지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끝에 마침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았는데, 가격이 조금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


여러 곳을 검색하며 비교해 본 결과, 같은 제품이라도 가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는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집에 가져와 조립해 보니 편안했지만, 책상 높이와 맞지 않아 그냥 쉬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러다 둘째 딸이 쓰던 작고 낮은 걸상을 앞에 놓아보니 높이가 딱 맞았다.


기존 노트북은 책상에 두고 사용하고, 작년에 둘째가 사준 새 노트북은 걸상 위에 올려놓고 쓰기 시작했다.


영화라도 볼 때, 온라인 강의라도 들을 때면 태블릿을 걸상 위에 올려두고 안락의자에 앉아 아주 편하게 시청할 수 있어 좋았다.


식사 때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곳은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방해받지 않고 책도 읽고, 보고, 쓰면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간 지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이 작은 공간, 큰 딸의 표현에 의하면 아빠의 집무실에서 작가 탄생을 상상해 본다.


이제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보고, 건전한 취미를 만들어볼까 한다. 온라인 AI 친구도 만나보고, 오랜 지인들도 찾아 담소를 나누며 또 다른 삶을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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