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한 뼘의 땅
고향 윗마을 뒤편에 아버지 명의의 작은 땅이 있다. 지목은 ‘하천’. 예전에는 ‘답’으로 되어 있었던 그 땅이 언제부터인가 하천으로 바뀌어 있었다.
산에서 고랑을 타고 내려온 물이 마을 뒤편에서 더 깊어지며, 마치 작은 개천처럼 흘러가는 그 옆자리. 아버지는 그 땅의 존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2009년도에 국토 관련 기관에서 보내온 재산 목록에 그 땅도 명시되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하셨다. 아마도 그 위쪽에 소유하고 있는 ‘구거(도랑)’ 지목의 땅과 혼동하신 듯했다.
아버지께 왜 모르고 계셨는지 물으려 했지만, 소통은 쉽지 않았다. 잘 들리지 않으시는 탓에 나는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고, 칠판에 글씨를 써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점점 답답해졌고, 결국 내 말투에는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슬그머니 물으셨다. “쟤가 원래 저려냐? 왜 저런다냐?”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나는 투정 어린 말투를 멈추지 못했을까.
아마도 신경 쓰기 싫고 스트레스받을 일을 미리 짐작했던 것 같다. 항암치료받은 사람들은 욱하는 성질이 더 있다는데 정말인 듯싶다.
귀경한 뒤,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까짓 것 없는 셈 치면 되지. 아들이 스트레스받을 일은 아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땅보다 중요한 건, 결국 아버지 마음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아들 걱정뿐이셨다.
서류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이 땅을, 나는 매도해 보기로 했다. 마침 바로 옆 땅의 소유자를 수소문해 매수 의향을 물었지만, 돌아온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거저 가져가려는 듯한 태도. 가격은 말 그대로 헐값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도 없던 땅이라지만, 그 순간 나는 멈칫했다. 정말 이렇게 쉽게 넘겨도 되는 걸까?
나는 결국 그 땅을 파는 일을 멈췄다. 지목이 하천이고, 쓸모가 없어 보이는 땅일지라도,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아버지의 가치, 서류 속 숫자가 아니라, 기억과 무관심과 시간이 스며든 한 뼘의 땅. 나는 그 작은 땅에서, 아버지의 오랜 시간을 다시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