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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 극복기

17. 이선생님 댁을 찾아가며

by 큰나무

이선생님께서 내 책( 괜찮니? 괜찮아! 위암 4기 극복기 )을 읽고, 답장까지 보내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본가에 가면 꼭 선생님 댁을 찾아뵙겠노라 마음먹었다.


마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날,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 그리고 누님까지 대동해 선생님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과일과 주전부리를 몇 가지 사들고, 작은 설렘을 품은 채 길을 나섰다.


전날 미리 전화를 드려 방문을 예고한 덕인지, 선생님 댁 거실 한쪽 벽엔 커다란 환영 벽보가 붙어 있었다. 그 순간 마음이 찡했다. 이선생님은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지만, 말씨와 행동에서는 세월의 무게보다 훨씬 젊은 기운이 느껴졌다.


격하게 반가움을 표현하시며, 내 책을 들고는 밑줄 친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설명해 주셨다.


어떤 대목에서는 눈시울을 붉히시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 따뜻한 손끝에서 진정으로 아픔을 함께 나눈 것처럼 깊이가 전해졌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했다.


지나온 시간이 쉽게 잊히지 않는데, 그 순간 다시 떠오른 기억들이 가슴 깊이 밀려왔다. 나는 그 모든 날들을 어떻게 견디어 왔던 걸까!


잠시 후, 선생님은 조심스레 나를 방으로 이끄셨다. 컴퓨터를 켜시더니,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 오신 파일을 보여 주셨다. 자리에 앉아 모두 읽기엔 시간이 부족해, 내 메일로 첨부파일을 보내주시기로 했다.


글 속에는 우리 고향마을 이야기와 함께, ‘광복계’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이어온 아버지의 친구들이 등장했다. 그분들 대부분은 이제 세상을 떠났고, 단 두 분만이 생존해 계신다.


“해가 길어도 못 만나고, 밤이 길어도 못 만난다.”

그분이 아버지에게 전화 통화 속 말이 가슴을 울렸다. 언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서로를 향한 발걸음은 이제는 쉽지 않다.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있을까.

나이 들어간다는 건 단지 몸이 느려지는 것만은 아닌듯하다. 마음은 아직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데 현실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나도 나이 들어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하며 곱게 늙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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