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스치는 봄, 머무는 기억
스치는 봄, 머무는 기억 – 포항·경주 1박 2일
난 KTX를 타고 모두를 대전역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여행,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하며 설렘은 점점 커졌다. 첫 목적지는 포항 스페이스워크. 발아래로 허공을 딛고 서있는 듯한, 짜릿한 바닷바람이 몸을 감싸며 온몸을 흔든다. 세찬 바람이 뺨을 스치고,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스며드는 바다 내음이 참 좋았다.
이내 호미곶으로 직진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바다에 심어진 손목과 유채꽃밭이 우리를 반긴다. 예전 언젠가 이곳을 찾았던 기억, 아련한 그때와는 또 다른 풍경.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은 어느새 내 마음속에도 환한 봄을 심어 놓는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셔터를 누르던 순간, 그 순간을 마음에도 깊이 담는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에 도착해 2층짜리 일본식 다다미방을 둘러본다. 누군가의 일상이었을 이 공간이 이제는 역사의 조각으로 남아 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도 둘러보며, 같은 장소를 보면서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저녁식사 후엔 경주의 동궁과 월지를 찾았다. 낮엔 햇살에 덥고 목이 말랐지만, 밤이 되자 서늘한 바람이 고즈넉한 월지를 감싼다. 잔잔한 물결 위에 비친 야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긴 역사를 스쳐 지나가야 한다는 게 아쉽기만 했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펜션. 젊은 주인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연예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싸인과 인증숏까지 받으며 숨길 수 없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테이블 몇 개를 이어 앉아, 매년 봄마다 함께 떠나는 여행의 소감을 나누고, 봄꽃보다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몇몇은 노래방 음악소리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몸놀림은 나이를 먹어도 배흘림은 솜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리고 이른 아침, 이슬 맺힌 풀밭을 지나 임도 숲길을 걸었다. 상쾌한 공기 속에 심호흡을 하니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아졌다.
불국사 앞에선 흐드러진 분홍빛 왕벚꽃이 마치 우리의 볼에도 연지곤지를 찍어준 듯했다.
수학여행 때 와보았던 이곳. 오랜 세월을 간직한 다보탑과 석가탑 앞에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너머도 건강하길… 마음을 담아 조용히 기도해 본다.
마지막 코스는 황리단길. 카페라테 한 잔의 여유로움 속에서 이번 여행을 되돌아본다.
사실, 장소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였는지가 더욱 깊게 남는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버스에 올라, 대전역에 도착했을 땐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성심당’에서 세트 메뉴 빵 한 상자를 사들 수 있었다.
짧았지만 진하게 스쳐간 봄. 이것으로 충분했다.
아참^^ 우리 관식(ㅋ)이 사진작가님!
멋진 장면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소중한 추억을 한컷 한컷 꾸욱 남겨주어 감사한다.
함께 한 선후배님! 그리고 미처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