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친정엄마 색
지난 봄비 덕분일까. 골짜기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물기를 듬뿍 머금은 땅에서는 씨앗들이 깨어나 뽀얀 얼굴을 밀어 올리고, 나뭇가지마다 아기 손처럼 오므렸던 잎들이 서서히 펼쳐지며 연둣빛을 입더니, 어느덧 햇살을 가려줄 만큼 연초록으로 무성해졌다.
진달래는 벌써 꽃잎을 다 떨구고, 골짜기엔 이제 하나둘 늦바람을 타고 연분홍 개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어릴 적, 들과 산을 뛰어다니며 진달래를 따 먹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개진달래는 먹으면 안 된다고 누누이 당부했지만, 꽃모양이 비슷해 무심코 따먹었다가 배앓이에 구토까지 하며 혼쭐이 났던 적이 있다.
그 개진달래가 요즘은 소나무 그늘 아래 소담스레 피어나 등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개진달래 중에도 유난히 흰 꽃인 듯 아닌 듯한 꽃이 있는데, ‘연달래’라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모두 그냥 ‘개진달래’라 했다.
그 연달래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포근해진다. 화려하지 않고, 수줍은 듯 피어나는 모습이 마치 신부의 어머니가 입은 연분홍 치마 색 같다.
포근하고, 감미롭고, 따사로운... 꼭 친정엄마를 닮은 색이다.
그래서 나는 이 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