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고요한 현충원
고요한 현충원, 기억의 길.
내가 현충원을 찾기 시작한 지도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해마다 6월이면, 한여름처럼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수많은 사람들 틈을 지나 국립현충원 언덕을 오른다. 그 길 위에는 하얀 비석들이 좌우로 도열하듯 질서 정연하게 서 있다. 그 풍경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숙연해진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아내의 삼촌, 즉 장인어른의 동생이 잠들어 계신다. 결혼 초, 아내의 할머니와 장인·장모님, 그리고 고모들과 작은삼촌까지, 온 가족이 함께 현충원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조용히 묵념을 올리고, 말없이 흘리는 눈물 속에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아내의 할머니도 이제는 고인이 되셨고,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신 지도 어느새 6년이 지났다. 함께 찾았던 고모님들도 연세가 들어 예전처럼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신다. 그렇게 해마다 찾는 이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있다.
올해 현충일에는 아내의 막내고모가 다녀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마음 한편에 미처 숙제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찜찜함이 남아 오늘에서야 아내와 함께 조용히 그곳을 찾았다.
햇살이 따가운 오후 시간, 현충원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가끔 멀리서 한두 사람이 오가는 모습이 보일 뿐, 시간마저 잠든 듯한 고요 속이었다. 나는 묵념을 드리고 난 후, 주변에 잠든 분들의 비석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그들의 짧지만 뜨거웠던 생애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군인들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현충원은 누군가에게는 슬픔의 자리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억과 감사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아야 할 이름들을 되새기게 해주는 조용한 성소와 같다.
돌아오는 길에 시가 세워져 있어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