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아버지 말씀과 운동화
지난달에 본가에 들렀을 때, 아버지는 조용히 말씀하신다. “좀 보자.”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걸까 싶어 “지금 말씀하시지요” 했더니, “좀 있다가” 하신다.
저녁을 마치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던 중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여셨다.
첫 번째는, 아버지 어머니 가묘한 봉분을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합장해 봉분을 하나로 하라는 말씀이었다. 아버지 쪽으로 자리를 정해서 함께 모시라는 당부였다.
두 번째는, 선산을 잘 관리해서 나의 아들에게 잘 물려주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뭐라 하셨는데 그새 잊어버렸네.
요즘 시대는 무덤도 개장해서 화장하고, 유골함을 세대별로 나란히 모시는 경우가 흔하다. 벌초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예전 그대로이시다. 지금껏 조상들을 정성껏 모셔왔고, 남들이 허투루 하면 꾸짖기까지 하셨던 분이니, 그 오랜 믿음과 관습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네” 할 수밖에 없었다.
말씀을 다 듣고 나니, 나 혼자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예전 방식 그대로 따르자니 지금 시대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고, 시대 흐름을 따르자니 조상에 대한 예가 너무 가벼워 보인다.
도시에 살면서 선산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앞으로 닥칠 일들이 벌써부터 버겁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본가에 가는 길에 운동화를 하나 샀다. 아버지 발에 잘 맞고 편하셨으면 좋겠다.
예전에 아버지가 내 신발을 보며 “참 좋다” 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하시는 말씀이겠거니 하고 흘려들었지만,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도 새 운동화를 신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싶었다. 그 기억이 마음에 남아 이번에 조심스레 준비한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나를 걱정하신다. “필요한 건 없냐?”, “돈은 괜찮냐?”
가만히 집에 계시는 분이, 오히려 나 걱정뿐이다. 아버지는 늘 나를 챙기는데, 나는 아버지께 무엇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다.
이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신발을 사드리는 내가 참 눈치도 없고, 늦기도 했다.
이번에 가면 아버지는 지난번 그 이야기를 또 하실까.
안 하시면 내가 먼저 여쭤보고 잘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