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29.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by 큰나무

내 몸을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아버지를 뵐 때마다 절감한다.

요즘 아버지는 안방에서도, 거실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벽에 설치된 안전바를 잡고 겨우 몸을 일으키신다. 힘겹게 몸을 세우고, 천천히 발을 떼어 거실로, 또 화장실로 나아가신다.

그렇게라도 스스로 움직이시고, 볼일을 보신다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본가에 들른 날, 어머니가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요즘은 화장실에 도착도 못 하고, 그냥 흘려버리시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침 누님이 예약해 둔 비뇨기과 진료일이라 아내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장마철, 그날따라 하늘이 구멍 난 듯 쏟아지는 빗줄기에 차마 문밖으로 나서기조차 어려웠다.

빗줄기가 잠시 멈춘 틈을 타, 재빨리 아버지를 차에 모시고 병원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버지는 병원만 오면 소변이 마려워도 나오지 않는다. 검사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나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의사에게 대신 설명한다. 아버지는 의사 말을 잘 들으시지도 못하고, 본인 말씀만 계속하신다.

“좋은 약 좀 주세요.”

그 말씀에, 의사는 조심스레 답한다.

“지금 드시는 약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차라리 소변이 나오는 게 안 나오는 것보다 낫습니다.”


소변줄을 달자니 아버지는 불편하다고 계속 불평하실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어 난감한 마음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약을 하나하나 확인해 본다.

점심에 드시는 비뇨기과 약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약은 4월 처방분이다.

이미 6월에 새로운 처방을 받아 아침저녁 두 번 먹도록 약이 조정됐는데, 아버지는 그 위에 4월 약까지 덧붙여 복용하고 계셨다.


잊고 드시지 않았던 약이 남았던 건지, 모르고 섞어 드신 건지... 결국 복용량이 과해졌고, 그 영향으로 조절되지 않는 소변 문제가 생겼던 듯했다.


나는 4월 약을 치우고, 지금 약만 드시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소변이 새는 일이 줄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의사가 아무 처방도 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신다.


속상하시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기저귀를 차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다행 아닌가. 얼마나 후련하고 편하실까.


‘잘 먹고, 잘 싸는 것’

이 단순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해지니 새삼 느껴진다.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말씀하신다.

“밥도 잘 먹고, 소화도 잘 되는데… 왜 이렇게 다리에 힘이 없고, 몸이 안 따라주냐...”


다들 나이 탓이라 말하지만, 그런 말은 아버지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병원에 가도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니, 들으시는 입장에서는 더 막막하실 것이다.

나 또한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깊어진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가까운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현실.

나 또한 점점 그런 상태로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보다 몸이 무겁고, 생각이 느려지는 나날들. 언젠가는 나도 아버지처럼 느끼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 아이들도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때때로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훗날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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