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흐린 날 저녁 오징어 감자전
하늘 가득 구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과학관 운동장으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묵직한 회색빛이 어깨 위로 내려와 눌러앉는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하니 발바닥에 땅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해온다. 이어폰 속 영어 문장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억지로 구겨 넣으며 몇 바퀴를 돌다 보면, 발바닥은 벌겋게 물이 오른다. 얇게 굳은 발바닥이 빨갛게 변하는 걸 보니, 아직 단련이 덜 된 모양이다.
만이천 보를 채우고 돌아와 샤워를 마치니 속이 허기졌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문득 비 오는 날 부침개가 떠올랐다.
어릴 적 방학 때가 되면 도시에 살던 사촌들이 놀러 오곤 했다. 먹을 게 없던 시절이라 감자도 삶아 먹고 옥수수도 쪄먹고 뒷마당에 솥을 걸어 놓고 감자 양파 깻잎을 밀가루에 버무려 전을 해 먹곤 했다. 그땐 한 장 한 장 노랗게 부쳐지면 개눈 감추듯 없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주어먹던 기억이 새롭다.
' 오늘 부침개나 해 먹을까?' 지나는 말로 뱉어 보니 '아내는 직접 해 봐 ' 말한다.
아내는 거실에 앉아 시골에서 가져온 마늘을 비닐장갑 낀 손으로 까고 있다. “오늘은 내가 해볼게.” 선언하듯 말하고 부엌에 섰다.
감자 한 개, 양파 한 개 껍질을 벗기고, 냉장고 속 생오징어 한 마리를 송송 썰었다. 고추, 대파, 호박 반쪽도 곱게 썰어 넣고 부침가루를 섞는다. 간이 맞을까 싶어 간장을 한 숟가락 넣으니 얼추 준비는 끝났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반죽 한 국자를 올려 넓게 편다. 불을 살짝 올리자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침샘이 반응하고, 마음은 이미 한입 베어문다. 두어 번 노릇하게 뒤집자, 한 접시의 오징어 감자전이 완성됐다.
아내 앞에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 엄지손가락이 번쩍 올라간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깻잎을 넣었으면 더 고소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아내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라고 한다.
언제 부침개를 직접 해봤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떡볶이를 만들어 주던 그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오늘 저녁은 오징어 감자전으로 충분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먹을 수 없는 막걸리 한 사발이...
그리고 내일은 남아 있는 오징어로 오징어김치전에 도전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