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깻잎 장아찌
노년을 좀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시고자 재래식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고향집을 떠나
도시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퇴직 후에도 아버지는 직접 운전해 고향집 밭으로 가셨고, 어머니는 그곳에 자식들 먹거리를 심어 오셨다. 그러나 10여 년 전, 아버지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자 누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밭으로 향하게 되었다.
다른 농지는 이웃에게 맡기고 약 10평 밭에는 시금치, 무, 파, 상추 같은 채소를, 약 80평 밭에는 고구마, 감자, 고추, 가지, 깨 등을 심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구마를 심어 제법 수확의 기쁨을 누렸지만, 해마다 같은 자리에 심다 보니 벌레가 생기고 모양도 맛도 시원치 않게 되었다. 결국 올해는 하지 감자를 캐고 난 자리에 고구마 대신 깨만 심었다.
작년에도 몇 이랑의 깨를 심어 깻잎김치를 먹었는데, 올해는 더욱 싱싱하고 고소한 깻잎을 더 많이 수확하게 되었다. 뜨거운 한낮에는 일을 할 수 없어, 새벽 이른 시간에 깨의 윗부분을 낫으로 베어 포대에 담아 온다. 집으로 가져온 깻잎은 깨끗이 씻어 한 장 한 장 곱게 개어야 한다.
그날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깻잎 개는 일을 맡았다. 방문한 막내딸이 숙제처럼 드린 일이었다. 그냥 곁에서 지켜보거나 졸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 장 한 장 정성껏 가지런히 쌓아 놓으셨다.
어머니는 그 깻잎에 간장, 양파, 마늘, 감식초 등을 넣어 양념을 만들고, 정성껏 장아찌를 담갔다. 몇 시간 후면 밥상 위에 올라올, 향긋하고 짭조름한 깻잎장아찌였다.
시집간 손녀딸에게도 한 통씩 챙겨주는 어머니의 섬세한 손길과 마음이 고맙다.
그리고 깻잎을 개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보며, 우리 누이들은 한참을 웃었다. “아버지가 이런 일도 하신다고?” 하면서.
그 웃음 속에는 감사가 가득했다. 여전히 건강하게 장아찌도 담그시는 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참 복 많은 자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