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38. 호캉스

by 큰나무

언제부터인가 ‘호캉스’라는 말이 익숙하게 들렸다.

여름 무더위를 피해 에어컨이 빵빵한 호텔에서 쉬어가는 것, 그것이 휴가의 또 다른 방법이라 했다.

둘째 딸이 이번 여름휴가는 호캉스를 하겠다고 하더니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드디어 호캉스를 경험해 보는구나 싶었다.


우리 휴가의 특성상 '7말 8초'라는 말이 있듯이 이 시기에 집중되는 산과 바다로 떠나는 여정은 교통 체증과 북적거림, 바가지 물가와 불편한 위생시설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호텔에서의 하루는 그 모든 수고를 건너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올여름 역시 더위가 37도~38도로 기승을 부린다.

둘째 딸이 태어나던 해에도 찜통더위가 이어졌던 기억이 겹쳐 올라왔다. 퇴근 후 찬물 욕조에 몸을 담그고, 손끝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버티던 여름, 아이스크림과 얼음으로 하루를 겨우 견디던 배부른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보다 올해가 더 덥게 느껴진다.


그런데 기다리던 호캉스 날, 하늘은 폭우를 쏟아냈다. 매스컴은 연일 수해 소식을 전했고, 전국이 비상상태였다. 큰딸은 야간 비상근무에 투입되어 호텔에 함께하지 못했다. 가족이 한데 모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호텔은 집에서 한 시간 남짓, 막상 도착해 보니 예전엔 별 다섯 개였다는 호텔이 지금은 별 네 개로 내려앉아 있었다.


비 덕분에 기온은 많이 내려갔고 어쩐지 빈집에 들어온 듯 큰방들은 휑하고 누추한 느낌이 들었다. 낡은 벽지와 오래된 내부 시설들을 보며 별 4개로 내려앉은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호텔도 호텔 나름인가!


그래도 호텔에 온 기분은 내고 싶어 수영복을 챙겨 수영장으로 향했다.


물속에 몸을 담그니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때는 물개처럼 수영장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호흡이 가빠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천천히 음파를 하고 몇 번 왕복을 하니 물살 속에서 다시금 몸이 살아나는 듯했다. 아내도 뒤따라오며 돌고래처럼 웃었고, 둘째와 아들 녀석은 몇 번 풍덩거리더니 제각각 수영장 안팎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누리는 물놀이의 맛은 더위와 피로를 모두 씻어냈다. 이래서 호텔에 오는 건가!


저녁은 비싼 호텔 식당 대신 근처 맛집을 찾았다. 간단히 먹을 것도 사들고 돌아온 객실, 큰딸부부가 빠져 텅 빈 침대가 어쩐지 서늘했다.


그래도 각자 침대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호텔의 낡은 구조와 인테리어가 잠시 마음을 덜 설레게 했지만, 둘째 딸의 정성과 배려를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뿐이다.


무엇보다도, 잊고 지냈던 수영의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호캉스는 충분히 특별했다.


앞으로는 주말마다 자유수영이라도 다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빈집 같던 호텔방에서의 하루를 조용히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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