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39. 관악산 정상에 다시 서다.

by 큰나무

병이 나으면 꼭 다시 올라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던 곳이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쯤은 늘 관악산을 올랐다. 허리가 좋지 않아 수영을 오래 했지만, 중이염을 앓으면서 수영장도 못 가게 되자 자연스레 집 가까운 산길이 나의 운동장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산에 가는 일은 내 삶의 즐거움이자 습관이었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고는 모든 것이 끊겨 버렸다. 더운 여름도, 추운 겨울도 마다하지 않고 오르던 산이 이제는 남의 세상 일이 된 듯 아득해졌다.


처음 의사가 수술조차 어렵다고 했을 때,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싶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밤마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뜬눈으로 하얀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10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이어간 끝에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수술 이후에도 또 10개월 동안 12번의 항암을 더 견뎌야 했지만, 결국 치료는 작년 말에 마무리되었다. 몸은 무너져 있었고 정신은 공허했지만, 다시 살아갈 힘을 찾아야 했다.


나는 걷기부터 시작했다. 하루에 만보를 목표로 공원길과 둘레길을 오르내렸다. 어떤 날은 아침에, 어떤 날은 저녁에. 그렇게 걷다 보니 잃었던 근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힘 빠졌던 팔다리에도 다시 기운이 돌았다.


어느새 약수터를 지나 마당바위까지 오르고, 8부 능선인 제2헬기장에도 닿을 수 있었다.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팔 굽혀 펴기와 스쾃을 거르지 않고, 횟수도 늘려가며 내 몸을 단단히 다져갔다.


지난 주말, 떡 한 조각과 두유, 그리고 시원한 물을 챙겨 다시 산을 찾았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제2헬기장에 닿았고, 그 순간 정상은 바로 앞에 있는 듯 손짓했다.


정상까지가 오늘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결국 나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연주대 정상에 다다랐다. 여느 때처럼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비켜 내가 자주 찾던 큰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문득, 재작년 암 진단 이후의 긴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삶이 피폐해져 모든 것을 놓아버렸던 시간들, 그러나 지금은 힘들었지만 다시는 못 오를 줄 알았던 정상에 올라 이렇게 땀을 식히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감사였다. 죽어버렸다면 할 수 없는 고민을, 살아 있기에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천천히 내려오는 길, 마음을 다잡았다. 한 번뿐인 인생,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실수 없이 잘 살아내자. 오늘처럼 힘겹게 오른 길 끝에 다시 마주할 정상처럼, 내 앞날도 언젠가는 환히 열릴 것이라 믿으며 발걸음을 내렸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뤘다.

내년 1월에는 흰 눈이 뒤덮인 태백산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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