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선배의 의연함
며칠 전, 오랜만에 전 직장의 선배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시원한 곳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선배는 자기 집 근처가 좋다고 했다.
선배는 늘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고민들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제법 그럴싸한 해답을 제시하곤 했다. 그의 말은 언제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작은 평정심을 되찾게 한다. 어떻게 그렇게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있는지 늘 신기했지만, 선배는 쉽게 답을 건넨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삶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과 깊은 이해가 있는 듯하다.
선배는 퇴직한 지 오래되어 자주 볼 수 없었다. 내가 아프기 1년 전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때 그는 갑자기 간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된 가슴속 작은 그림자가, 정밀검사를 통해 암세포 덩어리로 드러났단다. 수술을 받고 난 뒤라서 그런지, 원래 가늘고 마른 그였지만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처럼 명랑한 말투와 유머를 잃지 않은 채 거의 다 나은 듯 몸 상태를 설명했다.
나는 그저 “참 잘 됐네요”라며 위로 삼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암 진단을 받은 후에는 서로 통화하며 안부를 묻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대퇴부 뼈와 어깨, 갈비뼈 등 다섯 차례 전이를 겪으며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옥의 문턱을 다섯 번이나 넘나든 셈이다. 마른 체형의 그는 이제 바람만 스쳐도 날아갈 듯 위태로웠지만, 그럼에도 식사는 나보다 훨씬 잘했다. 도대체 그 먹는 양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선배는 나라 이야기, 골프 이야기, 옛 회사 이야기 등 입에 침이 마를 새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재산 정리도 이미 아들 둘과 아내에게 모두 이전해 마음 쓸 일이 없고, 이제는 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고 한다.
그 홀가분함과 담담함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토록 큰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의연하게 삶을 대할 수 있을까. 처음 겪는 환자나 가족들은 흔히 세상이 무너지는 듯 호들갑을 떨지만, 그는 달랐다.
마음의 상처를 갈고닦고, 삶의 끝자락을 담담히 바라보는 그의 큰 마음은, 언젠가 큰스님이 열반에 드실 때의 모습과도 닮은 듯 보였다.
식사를 마치며, 우리는 내년 봄 푸른 잔디밭에서 함께 운동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는 꼭 나을 거라 믿으며, 담담히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큰마음을 마음속에 담아두며,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