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어렵다

무대는 어려워…

by 이응사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뒤에선 각본이나 소설을 끄적이고, 대화의 장에 가거나 연애사업을 개진하고, 또 소통이나 연출의 방법을 골몰히 생각한다고 밝히면 다들 헤에 놀라는 것이다.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우쭐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한두 번. 중에서도 항상 캐물어지는 것은 “왜 무대에 서나요?“였다. 나는 내일 무대가 사라져도 좋은 사람이다. 무대를 자주 보러 가지도 않는다. 취향은 간헐적으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일절 없고, 무대경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적도 없다. (내 주변엔 연극에 구원받은 사람들, 그러니까 지박령 같은 사람들이 몇몇 있다.) 음악도 문학도 연애도 마찬가지다. 어떤 냉소나 권태, 혹은 젠체하는 허무주의를 가장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사적이고 내밀한 개인력. 우연한 계기로 무대에 닿고, 또 우연한 계기로 무대 주위를 맴돌게 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나들. 의식이 집중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 그러한 순간들마저 또 관조의 대상이 되고 앞으로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풍토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그리고 연극은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방법들 중에서 연극이 탁월한 이유는, 무엇보다 ’나’가 연극에 어울리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가장 보편적인 나인데, 예를 들면 ‘암울했던 학창 시절을 딛고(극복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 있는 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번민했던 청년의 연장선을 달리며 ‘끝이 나기는 하는 걸까 ‘ 하는 불안과 ’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 어떻게 되든 사실 상관없다’는 식의 체념으로 불안을 달래는 나약한 인간이다. 이외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나를 두고두고 관찰하는 것이 습관이 된 까닭에 무언가에 깊게 빠지는 일도 좀처럼 쉽지 않다. 때문에 때때로 충동적이게 되곤 한다.

비교적 최근의 사상에 조금이나마 구원받은 까닭은 ‘어느 한쪽으로 환원하면 색이 바래버리고 마는 리얼리티가 있다’고 대신 주장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연극이란…솔직한 말로 형편 좋은 도구다. 조금씩 달아오르다 절정에 이르곤 이내 팍 식어버린다. 이후에 은은한 탈력감이 남아 양쪽의 세계를 모두 만족시켜 준다. 무대경험의 인상은 일상이나 취미활동에도 간단히 번지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정말이지 여러모로 형편이 좋다. 취미로 보기엔 진지해 보이고, 직업으로 보기엔 불안정하며, 학문이라기엔 추상적이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단지 나만의 것. 진지한 태도로 무대에 임하고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분해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있기에 나 같은 한량도 한번 비벼볼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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